파묻힌 거인 -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하윤숙 옮김/시공사 |
현대 영미문학의 독보적 존재 가즈오 이시구로
《나를 보내지 마》 이후 10년 만에 선보이는 특별한 신작
가즈오 이시구로가 10년 만에 일곱 번째 장편 《파묻힌 거인》으로 우리 곁에 돌아왔다. 1989년 서른다섯 살 때 발표한 소설 《남아 있는 나날》로 영미권 최고의 문학상 중 하나인 부커상을 수상하면서 일찍이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이시구로는 등단 후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여섯 편의 장편과 한 편의 단편집만을 발표할 만큼 매 작품마다 완벽을 기하는 것으로 유명하며, 그 결과 모든 작품이 굵직한 문학상을 수상하고 부커상에만 네 번이나 후보에 오르는 기록을 세웠다. 역시 10년이라는 긴 시간 끝에 일곱 번째 장편이 출간된다는 소식이 들려왔을 때 평단과 대중은 기대감을 숨기지 않았고, 2015년 3월 《파묻힌 거인》은 발표되자마자 뜨거운 주목을 받았다. 주요 언론들은 “올해 이보다 더 중요한 소설은 출간되지 않을 것”(더 타임스), “걸작”(뉴욕 타임스), “놀라움 그 자체”(파이낸셜 타임스), “이전작과 전혀 다르면서도 가장 이시구로다운 작품”(워싱턴 포스트), “올해의 문학적 사건”(NPR) 같은 말로 격찬을 아끼지 않았고, 이에 부응하듯 작품은 출간 즉시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오르면서 위력을 과시했다.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일본에서 태어났지만 다섯 살 때 영국으로 이주해 영어로 작품 활동을 시작한 이시구로는 ‘1945년 이후 가장 위대한 영국 작가 50인’(《더 타임스》 선정)에 들 만큼 현대 영미문학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그를 독보적으로 만드는 것은 이러한 명성보다는 동양과 서양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은 이시구로만의 낯설고 깊은 상실의 정서다. 이번 신작에서 역시 망각의 안개가 내린 고대 잉글랜드의 평원을 무대로 잃어버린 기억을 찾아 나선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름답고 가슴 아프게 펼쳐진다. 또한 발표하는 작품마다 새로운 소재와 형식을 차용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 작가답게 이번 신작은 《반지의 제왕》을 연상시키는 판타지 모험담의 틀을 빌려 그 놀라움과 흥미진진함을 더하고 있다. “피터 잭슨이 영화로 만든다면 더없이 멋질 것”(더 타임스)이라는 바람대로 이 매혹적인 이야기는 할리우드의 실력파 제작자 스콧 루딘에 의해 영화로 만들어질 예정이다.
우리 시대 상실을 가장 유려하게 그려내는 작가 가즈오 이시구로
그의 가장 이례적인 작품이자 가장 이시구로다운 작품
부커상 수상작가의 판타지 모험담이라는 의외성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여전히 이시구로만의 색채를 그대로 간직한 채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고 뒤흔들어놓는다. 역사와 전설이 뒤섞인 시기, 브리튼족과 색슨족이 피비린내 나는 정복 전쟁을 벌인 이후 어디서 기원했는지 알 수 없는 망각의 안개가 평원을 뒤덮어 사람들은 서로의 잔혹했던 과거를 잊은 채 함께 살아가고 있다. 소설의 주인공인 브리튼족 노부부 액슬과 비어트리스는 서로를 깊이 사랑하지만 이 사랑이 어디서 왔는지에 대해서는 혼란스러워한다. 두 사람 모두 망각의 안개를 통해서만 서로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함께해온 삶을 전부 잊었다는 사실이 떠오를 때마다 힘들어하며, 과거를 확실하게 알지 못하기 때문에 지금 자신들이 느끼는 깊은 사랑에도 확신을 갖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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