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살림살이 - 칼 폴라니 지음, 이병천.나익주 옮김/후마니타스 |
문제는 경제야! 이 바보들아?
“그런 사회는 없다. 권력은 이미 시장으로 넘어 갔다. 작은 정부가 답이다. 시장이 너희를 풍요롭게 할 것이다. 결국, 문제는 경제야, 이 바보들아!”
지난 수십 년간 한국 사회를 지배했던 화두이자 담론들이다. 압축적 경제성장을 사회 구성의 원리이자, 정치 공동체의 지상 목표로 삼고 살아온 한국 사회에서 이 같은 구호들이 새삼 새로운 것은 아니었다. 비단 한국 사회만의 사정도 아니다. 고삐 풀린 시장 경제와 시장 사회를 인류사에서 정상적인 것 또는 어떤 자연적 진화의 산물로 바라보는 생각은 우리 시대의 지배적 통념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같은 구호가 만연한 사회에서 과연 우리의 삶은 나아지고 있을까? 경제가 성장하지 않으면, 우리의 일자리는 사라져 버리는 것일까? 경제가 성장하지 않으면, 빈부의 격차는 더욱 커지는 것일까? 오직 자기 조정적 시장만이 우리를 젖과 꿀이 흐르는 저 풍요의 세계로 이끌 수 있는 유일한 방편일까?
일찍이, 산업혁명을 겪으며 급변하는 서구 사회의 참혹한 풍경을 지켜보며, 폴라니는 허구적 상품(화)의 원칙에 입각한 자기 조정적 시장경제를 인간의 다양한 삶의 방식과 가치를 분쇄하는 ‘악마의 맷돌’에 비유한 바 있다. 나아가 폴라니는 이 같은 폭력적 시장의 횡포는 필연적으로 시장의 폭력에 맞서 그 자신을 보호하려는 사회의 반발/운동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 바 있다. 주지하듯, 폴라니의 이 같은 분석은 20세기 초반의 대공황 및 이에 따른 자본주의의 위기와 이에 맞서 사회를 보호하기 위해 등장한 국가의 개입 및 복지국가의 성립으로 빛을 발했다. 하지만, 이 같은 흐름도 잠시, 오늘날 우리는 신자유주의라는 ‘자본의 반격’을 통해, 또 다시 폴라니가 말한 이중 운동의 흐름이 다시 되돌려진 사회에서 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과연 우리는 이 같은 자본의 반격에 굴복할 것인가? 역사는 그렇게 종언될 것인가?
칼 폴라니는 경제 문명사라는 우회로 우리를 인도하며, 우리가 살고 있는 시장경제와 시장 사회를 자명한 것으로, 어떤 자연사적 산물로 간주하는 당대의 좌우 공통의 편견에 대항했다. 그리하여 우리 시대 시장체제를 거시 문명사적 견지에서 상대화, 특수화하면서 자신의 사회경제(사)학의 지평을 새롭게 확장했다. 나아가 이를 통해, 경제를 사회 속으로 재흡수하며, 우리의 삶의 다양한 가치와 방식에 창조적으로 적응케 하기 위해 노력했다. 폴라니의 이 같은 문제의식은, 신자유주의라는 또 다른 악마의 맷돌에 맞서, 우리의 삶과 사회를 보호하기 위해 새로운 운동을 준비해야 할 한국 사회에 많은 시사점을 제시하고 있다. 우리가 지금 다시 폴라니의 문제의식과 이론적 작업에 다시 한 번 주목해야 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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