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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도서

새의 시선 - 정찬

by 글쓰남 2018. 6.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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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의 시선 - 10점
정찬 지음/문학과지성사

가장 자유롭고 영원히 평안하길,

시대의 비극 위로 날아오를 새들을 향한 염원


1983년 무크지 『언어의 세계』로 문단에 데뷔한 이래 올해로 소설 이력 35주년을 맞은 작가 정찬의 소설집 2종이 동시에 출간되었다. <문학과지성 소설 명작선>의 스물아홉번째 책으로 출간된 개정판 『완전한 영혼』과, 제25회 오영수문학상 수상작을 표제작으로 한 신작 소설집 『새의 시선』이다. 그간 정찬의 소설에 대하여 “인문학으로서의 문학에 충실한 소설, 소설이 인문학에서 차지해야 할 본연의 자리에 걸맞게 인간에 대한 탐구를 본격적으로 수행하는 소설”(문학평론가 홍정선), “성과 속, 혹은 본질과 현상의 중간에서 그들 사이의 분리를 넘어선 교통에 대한 추구”(문학평론가 권영민), “소설의 개념에 대한 고정관념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열린 의식의 소산”(문학평론가 장영우) 등 다양한 분석과 평가가 제출된 바 있다.

정찬의 여덟번째 소설집 『새의 시선』은 표제작인 제25회 오영수문학상 수상작을 포함하여 총 일곱 편의 단편을 수록하였다. 누구보다 시대의 아픔에 통감하여 그 슬픔의 한가운데로 투신하면서도, 단순히 비감에 젖어드는 손쉬운 길을 경계하고 섬세하게 육화한 소설적 언어로 미학적 성취를 이뤄내는 정찬 소설의 특장이 돋보이는 신작이다. 이 책의 해설을 쓴 문학평론가 이소연은 “(정찬이) 인간성과 신성을 구성하는 두 축인 ‘윤리’와 ‘아름다움’을 동시에 품고, 깊은 예술혼과 탐색의 열정으로 이들을 혼융시킨다”는 점을 지적하며, “그의 소설은 삶의 진실과 예술의 아름다움을 함께 성취하고자 하는 노력의 소산”이라고 평하기도 하였다.



비극에서 또 다른 비극으로 이어지는 역사의 참상


형조가 술을 다시 마시기 시작한 것은 성당 건물이 철거되면서부터였다. 1994년 시화방조제가 완공되자 수자원개발공사가 사리포구를 포함하여 고잔 들판 일대에 신도시를 건설하기로 한 것이었다. 사리포구 언덕은 순식간에 폐허가 되었다. 그 폐허가 어떤 심리의 회로를 거쳐 8년 전 고문기술자에 의해 파헤쳐진 자신의 육신과 동일시되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차명아로부터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형조의 살을 파헤치는 쇠붙이가 눈에 보이는 듯했다.

형조가 세상을 떠난 것은 1995년 12월이었다. 날씨가 몹시 추웠고, 눈이 흩날렸다. 그가 마지막으로 그린 그림은 새였다. 새는 하늘처럼 보이기도 하고 바다처럼 보이기도 하는 푸른 공간을 날고 있었는데, 싱싱한 생명의 에너지를 품은 날개가 눈부셨다.

- 「사라지는 것들」, p. 105


이 책에서 다뤄지는 사건들은 다음과 같다: 1986년 김세진·이재호 분신자살 사건, 2009년 용산참사(「새의 시선」)/1999년 씨랜드 참사(「등불」)/2014년 세월호 참사(「사라지는 것들」 「새들의 길」 「등불」). 이 외에도 구체적인 사건으로 언급되지 않은 혈육의 갑작스런 실종이나 자동차 사고, 친구의 고문 후유증으로 인한 사망 등이 곳곳에 가득 차 있다. 정찬은 슬픔의 한복판에 온몸을 던지면서도 감상주의의 함정에 빠지지 않고, 반복되는 역사의 비극들 사이사이 놓인 연결고리에 집중한다. 효율만 찾는 자본주의, 폭력마저 불사하는 전체주의 사회에서 목숨을 잃어가는 사람들이 있다. 그렇다면 살아남은 자, 구조된 자는 가라앉은 자, 사라진 자를 어떻게 기억하고 살아갈 것인가. 이것이 집요하고도 치열하게 제기되는 이 소설집의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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