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밤 숲속의 올빼미 - 고이케 마리코 지음, 정영희 옮김/시공사 |
“나이 든 너를 보고 싶었어.
그럴 수 없다는 걸 알게 되니 섭섭하다.”
죽기 몇 주 전, 남편 후지타 요시나가가 아내 고이케 마리코에게 했다는 말이다. 당시 두 사람 모두 일흔을 앞둔 나이였지만 후지타의 눈에 비친 마리코는 여전히 젊은 여인이었나 보다. 추억을 입은 시간은 사람마다 다르게 인식되기 마련이다.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풋풋한 시절이, 그들에게도 있었다. 37년 전 만나 사랑에 빠졌고 함께 살기 시작했다. 좁은 아파트의 더 좁은 방에서 소설가를 꿈꾸던 두 사람은 책상을 마주 놓고 질세라 쓰고 또 썼다.
“동거를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어느 날 아침 그가 쑥스러운 기색으로 이런 말을 꺼냈다. ‘내가 쓴 소설이 있는데, 한번 읽어 보고 솔직한 감상평을 들려주면 좋겠어.’
그는 내가 다 읽고 소감을 말해 주기 전까지 다른 곳에서 기다리겠다고 했다. 원래부터가 장난스러운 상황극 같은 걸 좋아하던 남자였다. 시간을 정해 근처 호텔 커피숍에서 만나기로 했다.
집에서 자세를 단정히 하고 그의 작품을 읽었다. 그리고 서둘러 약속 장소로 갔다. 커피를 앞에 두고 기다리던 그는, 나를 보자마자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정말 좋던데’ 하고 나는 말했다. 질투심이 생길 만큼 대단한 작품이거나, 너무 엉망이라 어처구니없는 작품이면 어쩌지 싶었는데, 둘 다 아니어서 기뻤다. 그 말도 숨기지 않고 전했다.
그는 진심으로 안도한 모습이었다. 우리는 천장이 높고 환한 커피숍에서 커피와 케이크를 먹었다. 그리고 각자 앞으로 쓰고 싶은 소설에 대해 이야기했다.”
작가의 회고처럼 ‘행복한 한때’였다. 고이케 마리코는 사별과 코로나를 연달아 겪으며, 소설에서 수천 번은 썼을 고독이 사실은 무엇인지 몰랐다고 고백한다. 고독을 경솔하게 써 댄 업보일 거라고도 했다. 상실이 나의 것이 될 때 사람은 변한다. 죽음 역시 마찬가지다. ‘말기 암에 걸리면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죽는 것’이 이상적인 죽음이라 입버릇처럼 말하던 후지타 요시나가는 투병 기간 동안 완전히 변했다. 살고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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