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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도서

바람의 열두 방향 l 어슐러 K. 르 귄

by 글쓰남 2017. 2.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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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열두 방향 - 10점
어슐러 K. 르 귄 지음, 최용준 옮김/시공사
판타지와 리얼리즘의 경계를 뛰어넘어 
문학의 미래를 제시한 작가 어슐러 K. 르 귄
퓰리처상과 더불어 미국의 가장 권위 있는 문학상 중 하나인 내셔널 북 어워드는 2014년 ‘평생공로상’ 수상자로 어슐러 K. 르 귄을 선정했다. 미국 문학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작가에게 수여되는 이 상은 그간 수상자들의 이름만 살펴보더라도(필립 로스, 아서 밀러, 토니 모리슨, 존 업다이크, 스티븐 킹 등) 그 위상을 짐작할 수 있는데, 이미 수많은 단편들로 네뷸러상(여섯 번), 휴고상(다섯 번), 로커스상(스물한 번)을 수상하고 세계환상문학상과 카프카상, 펜/맬러머드상 등 장르를 넘나들며 기록적인 수상 경력을 보유한 르 귄으로서는 당연한 수순으로 보이기도 한다. 
“판타지와 리얼리즘의 경계를 뛰어넘었을 뿐만 아니라, 내러티브, 언어, 캐릭터, 장르 등 그 모든 것에 관한 규율을 거스름으로써 문학이 나아가야 할 새로운 길을 제시했다”, “르 귄의 풍부한 이미지로 구축된 세계는 독자들로 하여금 젠더와 인종, 환경, 사회에 대한 철학적이고 존재론적인 깊은 사유를 하게 만든다” 같은 선정의 변에서도 알 수 있듯이, 르 귄은 스스로 SF 작가로 규정하고 있지만 그 작품의 진폭은 이미 오래전부터 장르를 벗어나 미국 문단 전체에 폭넓은 영향력을 끼치고 있었다. 르 귄을 소개할 때면 언제나 빠지지 않았던, ‘SF 작가가 노벨 문학상을 받는다면 단연 1순위’라는 말 역시 그녀의 작품이 갖는 보편적이면서도 뛰어난 문학적 소양을 짐작게 하는 대목이다. 




문학적 은유와 아름다운 문장이 빛나는 
어슐러 K. 르 귄의 초기 걸작 단편집
《바람의 열두 방향》은 르 귄이 1975년 발표한 첫 번째 단편집으로, 인간 사이의 벽을 허물고자 하는 르 귄의 한결같은 주제가 인류학, 심리학, 철학, 페미니즘 등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며 풍부한 문학적 은유와 아름다운 문장으로 구현된 초기 걸작 단편집이다. 
르 귄 스스로 가장 낭만적인 작품이라 평하는 <샘레이의 목걸이>를 시작으로, 20세기의 파리와 15세기의 파리를 오가며 인간의 고독을 경쾌하게 풀어낸 데뷔작 <파리의 4월>, '헤인‘ 시리즈의 시작이자 《어둠의 왼손》의 토대가 된 <겨울의 왕>, 세계 3대 판타지 ‘뭍바다(어스시)’ 시리즈에 속하는 감각적인 단편 <해제의 주문>과 <이름의 법칙>,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현실의 권력 앞에 고뇌하는 과학자의 이야기를 흥미롭게 들려주는 <명인들>과 <땅속의 별들>, 인간 복제를 테마로 ‘사람’ 사이의 관계를 쓸쓸하고도 감동적으로 풀어낸 <아홉 생명>, 역시 상처 입기 쉬운 군상들의 연약한 내면을 예리하지만 따뜻한 시선으로 그린 <제국보다 광대하고 더욱 느리게>, 이상적인 도시 오멜라스를 배경으로 ‘희생양’ 테마를 섬뜩하게 제시한 휴고상 수상작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과 네뷸러상과 로커스상에 빛나는 <혁명 전날>까지, 르 귄 작품세계의 원형이 된 17편의 주옥같은 초기 단편들이 수록되어 있다. 
또한 17편의 각 단편에는 작가의 짧은 코멘트가 붙어 있어, SF에 관한 르 귄의 생각은 물론 각 작품의 뒷이야기를 듣는 재미도 쏠쏠하다. 르 귄에게 처음으로 원고료를 안겨준 작품, ‘여류 문필가’로서 부당한 처우를 받으며 자신의 온전한 이름 대신 머리글자만으로 작품을 실어야 했던 사연, 부당한 이유로 쫓겨난 동료를 위해 편집자에게 “고상한 형태로 역정을 내는” 작품, 도로표지판을 거꾸로 읽음으로써 탄생한 ‘오멜라스’의 작명 비밀 등 흥미로운 이야깃거리도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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