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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도서

마르탱 게르의 귀향

by 글쓰남 2018. 8.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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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탱 게르의 귀향 - 10점
장 클로드 카리에르.다니엘 비뉴 지음, 고봉만 옮김/문학과지성사

1560년, 프랑스의 어느 시골 마을을 발칵 뒤집어놓은 세기의 재판이 벌어진다. ‘마르탱 게르’라는 한 남자의 정체를 둘러싼 이 재판은 이후로도 수백 년 넘게 회자되며 소설.영화.희곡.오페라.뮤지컬 등 다양한 형태로 끊임없이 변주되었다. 한국의 독자들은 이 유명한 이야기를 마침내 소설로 만나게 되었다. 문학과지성사에서 펴낸 장-클로드 카리에르와 다니엘 비뉴의 『마르탱 게르의 귀향』(고봉만 옮김)이 그것. 

아버지와 크게 다투고 집을 나간 마르탱 게르는 8년여 만에 고향으로 돌아온다. 아내를 비롯한 가족들과 마을 사람들 모두 그를 반갑게 맞이한다. 그로부터 3년여 뒤 마을에 마르탱이 ‘가짜’라는 소문이 돌고, 그 의심은 나날이 증폭되어 결국 소송으로까지 이어지는데…… 수년간 마르탱 게르 행세를 한 ‘가짜’ 마르탱 게르에 대한 재판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이 희대의 사건은 놀람과 의혹, 대립과 반전이 엎치락뒤치락하다가 신의 섭리라고밖에 말할 수 없는 놀라운 우연으로 ‘진짜’ 마르탱 게르가 재판 말미에 출현하면서 끝을 맺는다.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한 이 이야기는 제라르 드파르디외와 나탈리 바이가 주연한 영화 「마르탱 게르의 귀향」(1982)을 통해 널리 알려졌으며, 영화의 자문 역할로 참여한 역사학자 내털리 제먼 데이비스의 동명 저작이 2000년 국내에 소개되기도 했다. 

이 책은 영화 「마르탱 게르의 귀향」의 감독 다니엘 비뉴와 시나리오 작가 장-클로드 카리에르가 영화를 ‘소설’로 옮겨 새롭게 구성한 작품으로, 16세기의 가장 유명한 재판으로 손꼽히는 마르탱 게르 사건을 흥미진진하게 펼쳐 보이며 영화와는 또 다른 재미와 감동을 독자들에게 선사한다. 소설은 주인공인 마르탱 게르와 베르트랑드 드 롤스의 결혼식 장면으로 시작한다. “두 농부가 서로의 재산을 합치고 자손을 갖기 위해” 올린 여타의 결혼식과 별반 다를 게 없었던 이 결합은, 여러 우여곡절을 거쳐 가족의 품으로 다시 돌아온 마르탱이 ‘가짜’ 마르탱으로 밝혀지면서 “희극과 비극이 뒤얽힌 한 편의 드라마”로 막을 내린다. 이 모든 이야기는 시종일관 게르 집안의 하녀 ‘카트린’의 입을 통해 생생한 목소리로 전해지며, 마지막까지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게 만드는 치밀한 구성으로 흡사 미스터리 소설을 읽듯 흡입력 있게 사건의 진실에 접근해간다. 

겉으로 보기에 이 소설은 뛰어난 기억력과 거침없는 입담을 가진, 어느 매혹적인 사기꾼이 벌인 희대의 사기극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이야기가 품고 있는 진짜 비밀은 ‘가짜’ 마르탱의 정체가 탄로 나고 사건이 해결됐다고 여겨지는 시점에서야 비로소 드러난다. 대체로 우리가 눈으로 보는 것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며 그 아래에 더 큰 진실이 숨겨져 있듯, 결말에 이를수록 독자들은 이 흥미로운 작품이 담고 있는 문제의식이 결코 가볍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 이 기이한 사건은 우리에게 한 인간의 ‘정체성’에 관한 문제를 새삼 일깨우는 한편, 법이나 지성으로 판단할 수 없는 인간의 모순성과 삶의 불가해함, ‘사실’을 넘어선 ‘진실’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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