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엄마가 힘들다 - 사이토 다마키 외 지음, 전경아 옮김/책세상 |
운전석과 조수석에 나란히 앉아 말로 하기 쑥스러운 말들을 문자로 주고받는 모녀, 갱년기 장애로 우울해하는 엄마에게 건강식품이나 화장품을 건네는 딸, 입덧으로 힘들어하는 딸의 집에 몰래 찾아가 음식을 해주는 엄마… 이렇듯 우리는 대개 엄마와 딸의 애틋하고 눈물 나는, ‘바람직한’ 모녀 이미지를 주로 소비해왔다. 그래서 다큐멘터리 ‘착한 딸들의 반란’ 속 나쁜 딸들과 “잘못했다 그래, 나한테. 나한테 왜 그랬어, 내가 엄마 거야? 엄마가 낳았으니까 엄마가 죽여도 돼? 내가 왜 엄마 거야?”(노희경 作,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드’에서)라고 소리치는 박완(고현정 扮)의 등장, 그리고 ‘딸은 엄마의 감정 쓰레기통이 아니다’라는 요지의 최근 SNS 글은 많은 딸들에게 공감을, 많은 엄마들에게는 충격을 주었다. 쇼핑부터 여행까지 모든 일상을 함께하는 단짝 친구 같은 모녀라는 이상과 모녀 ‘전쟁’을 겪고 있는 현실, 양 극단의 괴리는 현재 딸과 엄마로 살아가는 여성들에게 혼란과 이질감을 가져다주기에 충분했다. 더욱이 최근 몇 년간 페미니즘이 우리 사회의 뜨거운 화두로 대두하면서 모녀 관계를 포함한 여성들의 삶이 어딘가 잘못되었음을 깨달아버린 여성들의 답답함과 불안함에 대한 호소는 점점 더 커졌다.
《나는 엄마가 힘들다》는 일본의 정신과 전문의이자 비평가인 사이토 다마키와 일본의 유명 문인들이 대담 형식으로 모녀 갈등의 양상과 원인에 대해 분석하고 모녀 관계의 회복을 고민한 일종의 ‘모녀 관계 보고서’다. 일본 소녀만화계의 대모 하기오 모토, 《공중정원》,《종이달》등을 통해 여성들의 섬세한 심리묘사를 보여준 소설가 가쿠타 미쓰요, 페미니즘 사회학자이자《비혼입니다만, 그게 어쨌다구요?!》로 국내에도 이름을 알린 미나시타 기류 등 다양한 연령대의 여성들이 모여 실제 경험담을 토대로 모녀 관계를 둘러싼 현실과 여성의 삶을 깊이 있게 토론하며 많은 공감과 이해를 이끌어냈다.
모녀 관계는 사랑과 연민, 원망, 애증, 동정, 질투, 죄책감 등이 섞여 저마다 상당히 복잡하고 다양한 양상을 보인다. 지나치게 억압적인 엄마 때문에 괴로워하는 딸이 있는가 하면 엄마와의 관계가 너무 가까워 의존도를 낮추지 못해 갈등을 겪는 모녀도 있다. 언뜻 보기에 이 갈등은 개인과 개별 가정의 내밀한 문제처럼 보이지만 갈등의 원인과 배경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성차별과 여성 혐오, 가부장제, 세대 갈등 등 수많은 사회적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일본과 우리나라처럼 가부장적인 가족관이 여전히 당연시되는 환경에서 엄마로, 며느리로, 딸로 여성이 겪는 억압과 착취, 감정 노동은 필연적으로 ‘아빠 소외’를 비롯해 엄마와 자녀 간의 밀착 관계를 낳을 수밖에 없고, 여기에 성 편견의 무의식적 수용에서 비롯된 육아 방식까지 더해지면 모녀는 필연적으로 과도하게 밀착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된다.
이러한 모녀 관계의 특수성에 주목한 《나는 엄마가 힘들다》는 대담자들의 생생하고 구체적인 사적 체험이 녹아든 자기 고백으로 공감과 정서적 울림을 안기는 동시에 모녀간의 갈등이 시대적 맥락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성찰한다. 바로 지금 갈등하고 있는 엄마와 딸은 물론 갈등하는 모녀 사이에서 어려움을 느끼는 주변의 가족, 어린 딸을 어떻게 키워야 할지 고민하고 있는 새내기 부모까지 이 책은 많은 이들에게 유의미한 분석과 조언을 제공하는 한편, 나아가 우리 사회에서 모녀 갈등이 가진 의미와 모녀 관계를 둘러싼 고정관념, 사회 분위기를 돌아보게 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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