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뚝 속으로 들어간 의사들 -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기획/나름북스 |
“아픈 건 당신 잘못이 아니라 일 때문입니다.”
직업과 질병의 관계를 파헤치는 탐정, 직업환경의학 의사들의 이야기
산업재해와 직업병을 넘어 일하는 사람의 건강을 관리하는 직업의학과 유해한 환경으로 인한 건강장해를 예방하고 치료하는 환경의학을 직업환경의학이라 한다. 따라서 직업환경의학 의사는 환자의 직업과 작업환경에 가장 관심이 많은 사람이다. 그들은 가까운 곳에서 노동과정과 일터 환경을 꼼꼼히 들여다보고 일하는 사람이 왜 아픈지, 일하는 곳의 유해요인은 무엇인지, 일하는 방식을 어떻게 바꿔야 할지 연구하고 조언한다. 그래서 이들이 환자를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를 끌어내고, 직접 현장을 조사하고, 아픈 원인을 진단하는 과정은 마치 노련한 탐정이 끈질긴 수사로 범인을 밝혀내는 과정과도 같다. 직업환경의학 의사를 찾아오는 환자의 사연이나 사회적으로 문제가 된 직업병 사건들이 워낙 안타깝고 허망할 정도로 심각하기 때문에 이를 파헤치는 것은 때로 의사들에게 무겁고 고통스럽다. 이 책은 산업재해와 직업성 질환을 담당하며 이의 배경을 추적한 직업환경의학 의사들이 직접 그 과정과 소회를 낱낱이 밝힌 최초의 기록이다.
직업성 질환, 산업재해 발생 현장의 최전선에 있는 이 의사들은 “굴뚝 속으로 들어가 질병을 번역하는 수고로운 번역가들”(전주희)이다. 그들이 주목하는 것은 환자의 증상, 진단명, 질환의 치료뿐만이 아니다. 노동자들을 다치고 병들게 한 총체적인 환경, 즉 자본주의에서의 노동 환경과 과정을 필연적으로 들여다보게 된다. 그래서 이 책에 등장하는 산업재해와 직업병 사례들은 어느 의사의 회고로만 끝나지 않는다. 유해물질에 노출될 수밖에 없던 부실한 관리감독이 있었고, 아픈 사람을 방치한 구멍난 제도가 있었다. 사람의 생명보다 비용 절감과 이윤을 중시했고, 노동자를 쥐어짜는 시스템과 노조 탄압에 다수가 무관심했다. 직업환경의학 의사들은 아픈 노동자들의 몸과 작업 현장을 보며 이런 사실들을 처절하게 깨닫고 있었다. 따라서 이 의사들의 증언은 우리 사회의 노동현실에 관한 생생한 고발이자 건강권과 생명권을 수호하려는 실천이 된다.
공장의 유해물질과 근골격계 질환, 과로와 스트레스, 백혈병…
병들고 다치는 한국사회 노동현장에 관한 생생한 다큐멘터리
1장 ‘산업재해 혹은 노동권을 뒤흔든 일곱 개의 장면’에선 산업재해와 노동안전보건운동의 역사에서 회자되는 사건들을 다뤘다. 특히 1990년 제일화학 방직공장의 ‘죽음의 먼지, 석면’ 보도에 주목해 2006년 공장 주변 주민들을 수소문하고, 그들 대부분이 폐병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사회에 드러낸 것은 2009년 석면 생산 금지까지 이끌어낸 중요한 사례다. 이는 환경성 석면질환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자괴감을 넘어, 피해자들을 지원하고 석면의 유해성 문제를 사회적 의제로 끌어올린 전문가들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외에도 진폐증을 앓는 광부, 가학적 노무관리에 의한 최초의 집단 정신질환 사례, 유해 화학물질 중독, 기관사 공황장애와 자살, 근골격계 질환의 산재신청 사례 등 이후의 직업병 논의와 산재 인정 여부에 중요 분기가 된 사례를 가려 실었다. 참담한 역사가 단절되지 않고 현재까지 문제가 되고 있다는 점을 똑바로 지적하며 사회의 역할을 주문하는 서술도 새겨 읽어야 할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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