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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도서

헌책 낙서 수집광

by 글쓰남 2023. 2.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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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책 낙서 수집광 - 10점
윤성근 지음/이야기장수

김○○ 부장 너는 내가 반드시 죽인다

책탐정 윤성근 작가는 지난날 상사에게 입바른 소리를 했다가 ‘순교자 윤 스테파노’가 되어 끝내 퇴사할 수밖에 없었던 회사원 시절을 떠올리며, 책 속 흔적을 골똘히 바라본다. 『타인최면술』 중 가장 극적인 최면술이 설명되려는 대목 근처에 이 독자는 또 흔적을 남겼다. 아마도 김부장을 형상화한 듯한 ‘엎드려뻗쳐’한 사람의 그림 곁에 독자는 준엄하게 썼다. “殺”
김부장, 당신은 대체 무슨 짓을 했길래. 오래된 책더미 사이에서 책탐정은 책에 쓸쓸하고 애틋한 흔적을 남긴 사람들의 내면을, 그들이 처했을 상황을 상상해본다. 풀로 메모지를 덧붙여 남긴 흔적은 헤어드라이어로 열을 가해 살살 떼어내 기어이 안쪽의 글씨까지 읽어내고, 뭔가를 쓰고는 다시 박박 지운 흔적은 전등 불빛에 뒷면을 비춰가며 무슨 내용을 왜 지웠을까 추리한다.
『헌책 낙서 수집광』에는 프랜차이즈형 중고서점들에서라면 훼손도서로 규정되어 매입불가 통보를 받았을 흔적 많고 사연 많은 책들의 이야기가 가득하다. 다른 서점에서는 상품 가치가 없다고 쫓겨난 책, 누군가에 의해 버려지고 상처 입은 책들이 와글와글 책과 사람에 얽힌 이야기를 쏟아낸다. 흔적책들은 책을 읽고 흔적을 남기며 하루를 위로하고 한 시대를 버텨나갔을 평범한 이들의 삶을 증언한다.
이 책은 시간을 끌어안은 헌책에서 쏟아져나온 낙서와 잡동사니, 그리고 ‘별난 독자들’의 박물관이다.

책 속 흔적이라고 하는 것은 헌책에서만 찾을 수 있는 특별한 보물이다. 새책에는 흔적이 없다. 나는 책이 가장 책다워질 때가 언제냐고 하는 질문을 받으면 읽은 사람의 이야기가 책에 남는 그 순간부터라고 말한다. 헌책에서 찾은 흔적엔 비록 유명인은 아닐지라도 평범해서 더 값진 우리들의 이야기가 흐르고 있다. 나는 이 멋진 흔적들을 언젠가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 싶은 마음에 버리지 않고 차곡차곡 모아뒀다.
한 번도 만난 적 없지만 내가 좋아하는 문장에 나보다 먼저 밑줄을 그은 사람, 속지에 쓸쓸한 내용의 일기를 남긴 사람, 애틋한 마음을 담아 책을 선물한 누군가의 마음이 남은 책을 보면 괜히 가슴이 두근거린다.
흔적은 책을 읽은 사람을 상상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감동적이고 멋진 이야기들, 때론 우습고 기묘한 상상이 그득한 빛바랜 흔적들이 드디어 하나로 엮여 문밖으로 나온다. - 작가의 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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