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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도서

콩이나 쪼매 심고 놀지머 - 칠곡 할매들, 시를 쓰다

by 글쓰남 2016. 10.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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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이나 쪼매 심고 놀지머 - 10점
칠곡 할매들 지음/삶창(삶이보이는창)


칠곡 할매들, 다시 시를 쓰다 


작년에 『시가 뭐고?』를 출간해 화제가 되었던 칠곡 할매들의 두 번째 시 모음집이 나왔다. 칠곡군이 운영하는 인문교육을 받으면서 할매들은 그림을 그리고 연극을 하고 시를 써 왔다. 그 첫 번째 성과가 작년에 나온 『시가 뭐고?』인데 그 두 번째 성과물이 이번에 나온 『콩이나 쪼매 심고 놀지머』이다. 이번 시집에서는 『시가 뭐고?』에 실리지 않은 할매 시인들 119명의 막 뽑은 무 같은 시들이 실려 있다. 이에 대해서 작품을 고르고 해설까지 기꺼이 쓴 김해자 시인은, “일부 식자층의 프로젝트에 의해 가르치고 계몽하는 것에 초점이 갈 게 아니라 그들 안에 이미 존재하고 있는 가치를 찾아내야 할 겁니다. 못 배우고 눈에 보이는 영향력을 드러내지 못한다고 해서 하찮은 역사가 될 수 없습니다. 주변부에서 변두리 어법으로 내뱉는 “내는 아모것도 모리는데” 속엔 엄청난 스승들과 역사와 노하우와 이야깃거리가 숨어 있습니다. 그들이 품고 산 가치야말로 인문이요, 그들이 살아 숨 쉬는 곳이 지리요, 그들이 생을 지속하는 현상들이 문화“라고 단언한다. 

다시 말하면 시는 문자를 배운 “식자층”의 것이 아니라 문자가 되지 못한 언어를 품고 사는 “주변부”에서 나오는 것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시가 뭐고?』와 『콩이나 쪼매 심고 놀지머』는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 『콩이나 쪼매 심고 놀지머』에는 할매들이 살아 온 역사도 어눌한 리듬을 타고 살아 있지만 삶에 대한 해학과 유머도 또한 풍성하다. 우리가 할매들이 살아온 역사를 신파로 곧잘 만드는 것과는 달리 할매들은 삶이 주는 과제는 기쁘게 수행하며 살아왔던 것이다. 또한 농사를 통해서 얻은 눈은 문명의 화려한 관점과는 반대로 단순 명료하게 사물의 본질을 포착하기도 한다. 


달팽이 달팽이 집을 짓는

달팽이 달팽이는 열쇄도

피로없고 자몰쇄도 피로없네


_최재순, 「달팽이」 전문 




진짜 이성의 언어


“달팽이”의 움직임을 통해 “열쇄도” “자몰쇄도” 필요 없는 유토피아적인 삶을 무의식적으로 환기시키고 있거니와, “스펙터클한 영상과 이미지가 범람하는 디지털 세상”(김해자의 해설 『땅에 엎드린 칠곡 할매들의 시』)이 인간의 감각을 망친 반대쪽에서 발언한 ‘이성의 언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인간의 이성을 어려운 철학적 개념어로 정의하는 데 익숙해져 있지만 사실은 이런 언어들이 가장 본질적인 ‘이성의 언어’라고 말할 수 있다. 


살구를 땃다

비가 와서 상처가

많이 났다

아들이 가가라캐도

안가 간다

한글공부 배우는 학교에

가져 갔더니

마카다 맛있게

잘 먹었다


_이갑순, 「살구」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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