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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도서

축음기, 영화, 타자기

by 글쓰남 2019. 5.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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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음기, 영화, 타자기 - 10점
프리드리히 키틀러 지음, 유현주.김남시 옮김/문학과지성사

“매체가 우리의 상황을 결정한다”
총체적 인간이라는 개념을 완전히 해체하는 매체유물론
수많은 “키틀러리안”을 양산해낸 문제의 책!

“디지털 시대의 데리다” “매체 이론의 푸코”라 불리며 매체에 대한 독창적인 패러다임을 제시한 독일 매체이론가 프리드리히 키틀러의 대표작 『축음기, 영화, 타자기』가 출간되었다. 이 책에서 키틀러는 최초의 아날로그 기술 매체들의 태동기였던 1900년대를 집중적으로 분석하며 새로운 기술 매체들이 가져온 혁명적 변화를 서술한다. 축음기, 영화, 타자기로 대표되는 기술 매체들은 단지 경이로운 발명품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문자가 독점하던 시대의 종말과 새로운 기록 체계의 개막을 알리는 것이었다. 이와 함께 총체적 인간이라는 관념도 해체되기 시작했다. 더없이 전복적인 방식으로 역사를 매체사로 다시 기술한 이 책은, 여러 언어로 번역되어 키틀러에게 세계적인 명성을 안겨주었다. 비교적 쉽게 쓰여져, 난해하기로 소문난 키틀러의 매체론을 대중적으로 알리는 데 기여하기도 했다. 

문자 독점의 종말과 새로운 기록 체계의 등장
키틀러는 매체를 서술할 때 “문자”를 기준으로 그 전후를 대비시키는 다른 매체이론가들과는 달리 “문자”를 최초의 매체로 상정한다. 키틀러는 매체 개념을 “정보의 저장과 전달, 재현의 방식”으로 정의하는데, 따라서 저장이 불가능한, 문자 이전의 인간의 “언어” 혹은 “음성”은 매체에서 제외된다. 키틀러가 자주 사용하는 “문자의 독점”이라는 말은 이러한 맥락에 바탕을 둔 것이다. 문자 독점 체제가 가장 꽃을 피운 시기는 키틀러가 “기록 체계 1800”이라 부르는 1800년대 전후의 낭만주의 문학 시대였다. 하지만 문자의 독점 체계는 20세기 초 아날로그 기술 매체의 등장으로 순식간에 와해된다. 

키틀러는 “매체가 우리의 상황을 결정한다”는 문장으로 책을 시작함으로써, 그의 관심이 물질적 토대로서의 매체이며, 매체기술의 변화와 발전 과정에서 주체는 이제 인간이 아닌 기술 그 자체임을 분명히 한다. “기술 매체가 인간 중추신경계의 외화”라는 키틀러의 진단은 마셜 매클루언과 공통된 것이지만, 매클루언이 인간 중심적으로 매체를 바라보는 데 반해, 키틀러는 이를 탈인간화의 근거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매클루언과 구분된다. 그는 역사 전체를 “정보의 저장, 전달, 처리 과정”으로 사유한다. 인간이 매체를 창조하고 이용한다는 환상은 여지없이 무너진다. 키틀러 이론의 이러한 과격성은 열렬한 “키틀러리안”을 양산해내는 동시에, 디스토피아적인 “키틀러 제국”에 대한 강한 반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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