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 척 클로스터만 지음, 임경은 옮김/온워드 |
20세기의 황혼기를 유쾌하고 영리하게 풀어낸
X세대 문화 연대기의 결정판
90년대에 대한 향수는 강력하다. 밀레니얼 세대는 빈티지 록 티셔츠와 통 넓은 바지를 입는다. ‘올드 스쿨 힙합’과 ‘얼터너티브 록’, ‘시티팝’ 스타일의 음악을 찾아 듣는다. 과거를 그리워하는 현상은 어느 시대에나 있었다. 그렇다 해도 오늘날 90년대에 대한 향수는 조금 특별하다. 여러 분야에서 지속적으로 90년대를 주목하는 건 고유한 특성 때문이다. 이 책을 쓴 척 클로스터만은 90년대 미국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를 가로지르고 재구성하며 그 시대를 규정하는 핵심 정서를 드러낸다.
독자들은 익숙한 이야기들을 보며 향수를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단지 향수에 젖어 들기에는 너무 야심차게 쓰였지만 말이다. 이 책은 문화적 맥락을 치밀하게 밝히며 우리를 90년대로 안내한다. 우리에게 그리움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진정 무엇인지, 어떻게 한 시대가 그토록 사람들의 기억에서 빠르게 사라졌고 이토록 낯설게 느껴지는지 보여준다.
영화에서는 정형화된 블록버스터가 양산되던 80년대의 흐름이 어떻게 끊겼는지, 스포츠에서는 미국 사회에서 야구의 지위가 왜 바뀔 수밖에 없었는지, 인터넷이라는 막강한 기술이 당시 사람들의 삶에 어떻게 스며들기 시작했는지가 이 책에 모두 담겨 있다. 20세기 황혼기로의 여행을 하다 보면 90년대가 다른 시대와 확연히 구분된다고 느낄 것이다. 물론 빈티지 티셔츠와 통 넓은 바지를 찾아 입는 밀레니얼 세대에게도 훌륭한 가이드가 되겠다.
“이제는 까마득하지만 참 좋은 시절이었다”
90년대의 질감을 되살리다
호황은 정점을 찍었다. 냉전은 종식됐다. 집에서 비디오로 영화를 볼 수 있게 됐다. 일상에서는 정치적 올바름이 싹텄고 TV와 영화에서는 표현의 자유가 황금기를 맞이했다. 그리고 끝이었다. 전화 접속 모뎀으로 인터넷의 문이 열리고 아날로그 시대는 저물었다. 뉴욕 쌍둥이 빌딩이 무너지며 국제 정세는 혼란스러워졌다. 90년대는 빠르게 잊혔다.
빠르게 잊혔다는 사실은 그리 멀지 않은 90년대를 까마득한 과거로 느끼게 한다. 그때는 거실에 놓인 전화번호부에서 얼굴도 모르는 사람의 집 주소까지 찾을 수 있었다. 대통령은 섹스 스캔들을 일으키고 탄핵 소추되었다가 그 직후 가장 높은 지지율을 기록했다.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은 3연패를 달성하고 야구로 전향했다가 이듬해 코트로 복귀해 다시 3연패를 달성했다. 힙합 아이콘 투팍과 노토리어스 B.I.G는 총에 맞아 사망했다. 핵주먹 마이크 타이슨은 경기 도중 에반더 홀리필드의 귀를 물어뜯었다. 지금 보면 말도 안 되는 일들이다.
저자는 “현재의 프리즘을 통해 과거를 바라보면 실제 경험이 왜곡될 수 있다”라며 그 시대의 질감을 되살리는 데 집중한다. 90년대에 있었던 수많은 사건의 맥락을 들여다보면 말도 안 되는 일들이 당시에 어떻게 받아들여졌는지 알 수 있다. 저자에 따르면 그때는 세상이 어지러워지기 시작한 것처럼 보여도 구제가 불능할 만큼은 아니었다. 새로운 기술이 등장했지만 인간이 통제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기존의 규칙에 결함이 있다고 인식되기 시작했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규칙을 따랐다. “이제는 까마득하지만 참 좋은 시절”인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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