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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도서

70세 사망법안, 가결

by 글쓰남 2018. 10.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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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세 사망법안, 가결 - 10점
가키야 미우 지음, 김난주 옮김/왼쪽주머니

저출산 고령화 사회

평범한 일상을 관통하는 우리 사회의 민낯

아내가 얼마나 힘든지는 관심도 없는 남편, 도움이 필요할 때 외면한 딸, 촉망받는 젊은이에서 은둔형 외톨이로 전락한 아들, 며느리에게 10여 년째 병수발을 받으면서도 감사할 줄 모르는 시어머니. 이런 숨 막히는 상황 속에서 가결된 70세 사망법안은 도요코에게 한 줄기 빛이 된다. 그러나 한 줄기 빛이 모든 어둠을 밝힐 수는 없는 법. 이 사실을 깨닫게 된 도요코는 집을 나간다. 그녀의 가출을 계기로 남은 가족들은 온갖 해결책을 마련하기에 이른다. 살림, 환자 수발 등 도요코에게만 맡겨 왔던 모든 일이 자신들의 몫이 되니, 어떻게든 불편을 덜고자 더더욱 안달이다. 마치 ‘70세 사망법안’이 가결됨으로써, 지금 당면한 현실의 총체적 문제는 무엇이며 거기에서 벗어날 획기적인 방법이 무엇인지를 온 국민이 고민하고 또 실천하게 되는 것처럼.

도요코의 식구들이 그녀의 입장을 단 한 번이라도 헤아려 봤다면, 그리고 사회가 저출산 고령화 문제가 나의 문제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미리 해 봤더라면 어땠을까? 나와는 무관한 일이라 방심한 이들에게 벼락같이 내리친 가출과 법안을 단순한 소설이라 치부하기엔, 피부에 와닿는 내용이 서늘하리만치 현실적이라 소름이 끼친다. 과연 소설 속 타인의 상황일 뿐이라며 안도해도 괜찮은 것일까? 


타인의 이야기 속에 나의 모습이 투영된다

우리 역시 도요코의 가정이 보여 준 속살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지금 이미 그런 상황일 수도 있고, 머지않아 맞닥뜨릴 수도 있다. 그래서 소설은 더욱 현실적이고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온 나라가 70세 사망법안으로 공황 상태에 빠지듯, 도요코의 가출로 남은 가족들 또한 공황 상태에 빠진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식구들과 혼란에 빠진 국민도 나름의 자구책을 마련하며 상황을 타개해 간다. 그와 동시에 법안의 시행 여부에 대한 궁금증은 책을 읽는 내내 가시질 않는다. 

찬반 논란을 가져오는 쉽지 않은 주제의 이 책이 쉽게 읽히는 이유는 굵직한 등장인물들부터 스치듯 드러나는 인간 군상들까지, 어느 누구 하나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바로 나 자신의 그리고 우리의 이야기인 듯싶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을 단순한 픽션으로만 볼 수 없고, 그렇기에 가슴 한 켠이 더욱 아려 온다.



평범한 삶의 단층에서 

함께 살아가야 할 미래가 비치다

희생을 미덕으로 알고 자란 엄마의 모습을 보는 자식, 연금으로 카페에 오는 노인들을 바라보는 취준생의 시선. 이들의 모습에서 문득 만 65세 이상 지하철 무료 이용에 관한 열띤 논의가 떠오른다. 《70세 사망법안, 가결》이 보여 주는 평범한 삶의 단층은 우리네 삶과 한 치 다를 바 없다. 제27회 추리소설 신인상으로 화려하게 등단한 작가 가키야 미우가 풀어내는 일본 사회의 모습은 마치 현시점을 투사하는 듯하다. 이에 응답하듯, 일본 문학 전문번역가 김난주는 칼과 방패처럼 대립하는 이들의 모습을 오늘날 우리의 이야기에 유려하게 녹여 낸다. 가키야 미우와 김난주의 조화로운 언어는 때로는 불편하고도 마음 아리게, 때로는 건조하지만 격정적으로 스며든다. 우리는 그들 개개인의 상황을 ‘나’에 투영하여 화를 내기도 하고 억울해하기도 하면서, 차츰 서로의 입장을 이해한다. 

우리가 감내해야만 하는 힘듦이 한 편의 소설로 모두 씻겨 내려갈 수는 없다. 그러나 세상에는 다양한 길이 있다. 굳이 완벽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더라도, 한 편의 이야기가 위로를 주기도 한다. 새로운 시작을 내딛은 도요코, 그리고 도요코의 부재로 기존의 자신을 하나씩 벗겨 내는 가족들. 임계점에 다다랐던 우리의 이야기는 여기서부터 새로운 시작을 내디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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