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어떻게 이 행성을 쥐락펴락하는 존재가 되었을까?
오늘날의 지질시대를 이해하는 열쇳말 ‘인류세’
이 책의 제목 ‘휴먼 에이지’는 지질시대 개념인 ‘인류세(Anthropocene)’를 일상용어로 풀어낸 말이다. 인류세라는 단어는 어떻게 생겨났을까? 여기에 얽힌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2000년 멕시코에서 열린 지구 환경 관련 국제회의 현장에서의 일이다. 토론을 주재하던 의장이 오늘날 우리는 홀로세(현세)를 살고 있다는 말을 여러 번 반복하자 한 참석자는 괜히 짜증이 나서 의장의 말을 끊고 말했다. “아뇨, 우리는 이미 인류세를 살고 있단 말입니다.” 그는 성층권의 오존층 파괴를 밝힌 연구로 1995년 노벨화학상을 수상한 기후과학자 파울 크뤼천이었다.
크뤼천은 인류가 지구 전체를 쥐락펴락하는 행위자로 떠오른 현재의 지질시대를 인류가 자연에 일방적으로 맞추는 편이었던 수천 년 전 시절과 싸잡아서 부르는 것이 온당하지 않다고 여겼을 것이다. 그날 이 발언에 장내는 일순 조용해졌고 많은 과학자가 인류세라는 단어에 흥미를 보였다. 크뤼천에게 단어에 특허를 신청하라고 한 동료가 있을 정도였다고 한다. 나중에 크뤼천은 인류세라는 단어를 공식적으로 제안했다. 이후 이 단어는 빠르게 과학계와 대중 양쪽에서 인지도를 높였다.
인류세는 우리가 이전까지 어렴풋하게만 의식했던 현상을 지칭할 표현이 되어주었다는 점에서, 나아가 그럼으로써 그 현상을 새롭고 더 깊이 있는 시각으로 바라보게 해주었다는 점에서 탁월한 용어다. 우리는 인류세라는 용어 덕분에 인류가 지구 역사에서 새로운 단계를 열었다는 사실을 충격적으로 실감할 수 있게 되었고, 먼 미래의 지질학자가 인류세를 연구한다면 과연 무엇을 보게 될까 하는 상상을 토대로 좀더 넓은 시공간적 관점에서 문명과 지구 환경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다이앤 애커먼의 『휴먼 에이지』는 바로 이러한 지질학적 인식에서 출발한다. 제1부와 제2부에서 저자는 어째서 우리가 인간의 시대를 살고 있다는 것인지, 이 시대의 특징은 무엇인지 흥미롭게 설명해나간다. 아울러 저자는 왜 우리가 스스로를 인간의 시대에 살아가는 존재로 인식해야 하는지 환기한다. 인류세는 인간이 지구에 온갖 재주를 부리는 시대를 가리키기도 하지만, 동시에 인간이 지구온난화를 동반한 기후변화, 도시화, 여섯번째 대멸종을 일으키고 있는 생태계 파괴, 지구적 무역으로 인한 지구적 서식지 교란, 에너지 고갈 등을 불러일으킨 현상을 가리키는 것이기도 하다. 이는 경이로우면서도 섬뜩한 일이다.
우리가 주무르고 휘저은 지구는 이제 끝장나는 걸까?
인간의 손길과 지구의 운명을 잇는 가장 솔직한 고백
인간은 지구를 망치기만 하는 골칫덩이일까? 인류의 시대는 어리석은 결말로 치닫고 있을 뿐일까? 저자는 이 질문을 분기점 삼아 비관적인 미래학자들의 전망과는 다른 짐짓 새로운 목소리와 청사진을 내놓는다. 인간은 자신의 파괴력과 무지막지함을 자각하고 자연의 분노를 뼈아프게 인지했다는 것, 과학기술과 자연본성을 길잡이 삼아 다른 미래를 만들어나가기 시작했다는 것, 우리가 이대로 모든 것을 망칠 수도 있지만 그렇게 되도록 놔두지 않을 것이며 이미 수습을 시작했다는 것이다. 실수를 바로잡을 기회가 완전히 지나간 것은 아니다. 이것이 중요하다.
필요한 것은 관계와 인식의 변화다. 실제로도 인간과 자연의 연대 의식, 무엇이 자연이고 인공인가 하는 인식, 자연은 늘 좋고 인공은 늘 나쁘다는 이분법적 사고는 인간이 자연을 만지작거린 만큼이나 크게 바뀌어왔다. 저자는 인식의 한계를 한번 더 깨뜨려보자고 제안한다. 지금까지의 통념처럼 자연과 인공, 생명과 기계, 보존과 개발을 대립하는 것으로만 인식해서는 인간의 시대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우리가 우선 이 시대를 정확하게 잘 이해하지 않고서는 이 많은 인류세의 문제들을 해결할 방안을 떠올릴 수도 없을 것이다. (제3부에서 말하는 것처럼) 인류세에 자연과 인공의 경계는 이미 선명하지 않다는 것, 그러나 그 모호함은 개탄하고 두려워할 일이기보다는 양쪽에게 이롭게 적극 활용할 지점이라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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