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폭력 검은 저항 - 수전 캠벨 바톨레티 지음, 김충선 옮김, 오찬호 해제/돌베개 |
“침묵하는 다수가 우리에게 동조하고 있습니다.”
증오와 혐오의 시대,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이야기
“나를 죽일 수는 있을 테지요. 하지만 나를 겁먹게 할 순 없소.”
차별과 증오를 묵인하는 사회의 다른 이름, KKK
그 불의한 백색 폭력에 맞서다 희생된 흑인들의 이야기
★ 미국 학교도서관저널 최고의 어린이 책 ★ 커쿠스 리뷰 최고의 청소년 책 ★ 북리스트 최고의 책
★ 혼북 팡파르 선정도서 ★ 주니어 라이브러리 길드 선정도서
우리가 에이브러햄 링컨을 이른바 ‘위인’으로 기억하는 가장 큰 이유는 아마도 ‘노예해방선언’ 때문일 것이다. 미국 노예제도의 250년 역사에 종지부를 찍은 이 위대한 선언으로 흑인들은 진정한 해방을 얻었을까? 노예제도가 폐지되고 또다시 150여 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라는 피맺힌 외침이 이어지고 있다. 이것이 비단 미국의 문제 혹은 흑백의 문제이기만 할까?
1866년 5월, 미국 남북전쟁에서 남부 연합이 패한 뒤 테네시 주 펄래스키의 백인 청년들이 ‘쿠 클럭스 클랜’(KKK)이라는 비밀 모임을 만든다. 처음에는 유령처럼 흰 천을 뒤집어쓴 채 말을 타고 사람들을 놀래던 이들은 비밀주의로 사람들을 매료하며 남부 전역에서 점차 세력을 확장해 ‘보이지 않는 제국’을 형성한다. 자경단을 자처한 이 복면 기마단은 ‘백인처럼’ 투표하거나 땅을 소유하거나 학교에 가거나 예배에 참석하려고 하는 흑인들과 이들을 돕는 백인들에게 마구 폭력을 휘둘렀다. 1871년, 수없는 흑인들이 목숨을 잃은 뒤에야 ‘쿠 클럭스 클랜 법’이라고 불리는 민권법이 통과되고 대대적인 재판이 시작되었지만, 생존자들이 목숨을 걸고서 증언하고 고발했음에도 제대로 처벌받은 사람은 거의 없었다. 오늘날 KKK가 이전만큼 파괴적인 영향력을 갖지 못한다지만, 그 기저에 깔린 차별과 편견, 증오심은 여전히 힘이 세다.
수전 캠벨 바톨레티는 전작들에서 아일랜드 대기근, 히틀러 유겐트 등 역사 속 중요한 사건을 실제 경험하고 목격한 사람들의 목소리로 생생하게 전해 왔다. 이 책에서는 옛 노예들과의 면담을 통해 얻은 방대한 증언들과 의회 기록, 신문기사와 화보, 일기 등 다양한 사료를 토대로 피해자와 목격자, 가해자와 방관자의 목소리까지 고스란히 빌려 참혹한 역사를 생생하게 재구성했다.
패전의 앙금과 경제난, 재건 시기의 혼돈을 흑인에 대한 광기 어린 분노로 표출하며 이를 ‘정의’로 포장한 KKK가 약자에 대한 편견과 차별, 증오와 폭력을 묵인한 남부 백인 사회에서 탄생한 것은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인종뿐만 아니라 성별과 성적 지향, 종교, 경제력, 외모 등 수많은 기준으로 차별을 조장하는 사회에서 KKK는 어떤 모습으로든 다시 활개를 칠 수 있다. 『하얀 폭력 검은 저항』은 약자 혹은 소수자 혐오와 증오 범죄가 만연한 우리 사회가 묵과해서는 안 될 문제들을 다시금 짚어 보게 만드는 책이며, 무엇보다 무자비한 억압과 폭력 앞에 자유와 존엄을 지키려다 희생된 이들의 삶을 역사의 중요한 페이지로서 확인하고 기념하는 책이다.
책의 특징
■ 복면을 쓴 증오, 민주주의에 비밀스레 뿌리박은 KKK의 탄생
KKK라는 이름은 한 번쯤 들어 봤을 것이다. 백인 우월주의 단체로 흔히 알려진 이들은 눈구멍만 뚫은 원뿔형 복면과 유령 같은 통옷, 언뜻 장난스럽게 보이는 복장 아래 정체를 숨긴 채 증오를 내뿜으며 잔혹한 폭력을 휘둘렀다. 『하얀 폭력 검은 저항』They Called Themselves the K. K. K.(2010)은 모임이라는 뜻의 그리스어 ‘쿠클로스’kuklos에 비슷한 뜻의 게일어 ‘클랜’clan을 덧붙여 조금 변형한, 사실상 별 뜻 없는 이름의 사교 모임 ‘쿠 클럭스 클랜’ku klux klan이 어떻게 나치에 버금가는 최악의 증오 집단이 되었는지를 상세하게 다룬다.
남북전쟁에서 승리한 북부 연방이 내민 ‘노예제 폐지’는 흑인 사회를 위한 것이 아니라 농업 사회인 남부를 완전히 항복시키기 위한 카드였다. 이미 산업화가 진행된 북부와 달리 남부의 대농장은 전적으로 노예 노동력에 의존하고 있었는데, 이제 백인 지주들은 ‘자기 것’이었던 노예에게 임금을 줘야 하고 소작농들은 일거리를 두고 흑인과 경쟁하게 되었다. 인종 차별을 신의 섭리로 여기며 살던 백인들, 특히 흑인 노예가 큰 재산이었던 남부 백인들은 ‘재건 시대’라고 불리던 이 시기에 세상이 뒤집힐 것이라는 막연한 두려움과 패전의 절망감 속에 자유민이 된 흑인을 향한 증오심을 키워 갔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흑인들이 새롭게 얻은 자유를 미처 누려 보기도 전에, KKK가 이른바 ‘인종 예절’을 수호하고 ‘깜둥이들을 단속’하기 위한 자경단 역할을 자처하고 나섰다. 이들은 단순히 말을 달리며 유령처럼 나타나 밤에 다니는 사람들을 겁주는 데서 멈추지 않았다. 그들의 존재가 흑인들에게 위협이 된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본격적으로 세를 넓혀 가며 소굴마다 단원을 모집해 규율과 암호를 정하고, 그들만의 재판을 진행해 흑인들에게 채찍을 휘두르고 총을 쏘고 목을 매달았다. 그들은 “이 나라를 통치해야 할 사람은 바로 높은 지성을 가진 정직한 백인들이다!”라고 외치며, 옛 노예가 피땀 흘려 마련한 뙈기밭을 빼앗아 백인 지주에게 넘기고, 남부와 대척하는 공화당이 표를 얻지 못하게 흑인들의 투표권 행사를 막고, 백인의 세금으로 흑인까지 가르치는 공립학교 교사들을 탄압하고, 흑인의 자주성을 설교하는 흑인 목회자들을 겁박했다. 많은 언론들은 여기에 동조해 흑인 사회에 대한 편견을 키웠으며, 정부는 KKK의 실상을 적극적으로 파헤치고 저지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 수없는 흑인들이 목숨을 잃었지만, 법이 바뀌고 조사가 진행되어 실제 재판이 이루어진 후에도 제대로 처벌받은 이는 거의 없었다. 게다가 남부는 물론 북부의 백인들까지 전쟁과 재건 과정에 피로감을 호소하자, 정부는 사면법으로 관련자들을 대부분 풀어 주고 급하게 남북 화해를 시도했다. 이후 KKK는 소설, 영화 등 대중문화를 통해 일종의 ‘신화’로 조작되었고 20세기에 들어서도 공공연히 모습을 드러내며 폭력을 행사했다.
저자는 취재차 직접 아칸소 주에서 열린 ‘KKK 총회’에 참석하기도 했다. 어린아이부터 중년 남녀까지 가족 단위의 사람들이 언덕 위에 모여, 십자가를 불태우고 나치를 연상시키는 손동작을 하며 “백인의 힘!”을 외치는 모습을 사진과 함께 상세히 묘사했다. “우리에게는 복면과 통옷이 필요 없습니다. 미국의 침묵하는 다수가 우리에게 동조하고 있습니다.”라고 외치는 한 여성 단원의 이야기는 그 장면을 직접 목격한 저자만큼이나 독자들에게도 큰 충격을 안겨 주며, 많은 생각거리를 남긴다. KKK라는 이름이 가진 힘은 재건 시대만큼 강력하지 않지만, KKK를 탄생시킨 근원적인 편견과 차별, 증오와 폭력은 사라지지 않았다.
■ 자유와 권리를 쟁취하고자 했던 흑인들의 진짜 목소리
그러나 저자가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루려 한 것은 부당한 폭력에 맞서다 희생된 흑인들의 삶이다. 저자는 남부 여러 지역을 다니며 대표적인 KKK 인사인 네이선 베드포드 포리스트 등 수많은 남부 연합의 영웅들을 기리는 동상과 기념물들을 목격했지만, 정작 그들 손에 희생된 이들을 기리는 기념비는 보지 못했고, 그런 것은 어디에도 없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이 책을 쓰기로 했다. 이 책이 “희생자들의 용기와 그들 각자가 미국 역사에서 담당했던 중요한 역할을 기리는 기념비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이 책에는 KKK의 공격을 피해 집을 나와 숲으로 동굴로 숨어들면서도 “이미 그보다 끔찍했던 세월을 살아왔고 노예제도하의 매서운 시대도 견뎌 냈”으니 “이러한 협박에 겁먹지 않겠다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끝끝내 지지 않으려 했던 흑인들의 이야기, 그리고 순수한 선의로 그들을 도우려 했던 백인들의 이야기가 KKK의 폭력적인 역사에 짓눌리지 않고 펼쳐진다. 2년 동안 죽도록 일해서 갖게 된 땅을 지키려 한 텃슨 부부, 어떤 협박에도 유권자 등록을 하고 한 표를 행사하려 한 헨리 립스컴, 공화당을 지지하며 하나님의 뜻과 보편적인 사랑을 전하려 한 장애인 선교사 일라이어스 힐, 백인 교사로서 흑인 학생들을 가르치려다 헛된 소문에 휘말리고 결국 목숨까지 잃은 윌리엄 루크, KKK의 폭력으로부터 흑인 사회를 지키려 한 민병대 소속 짐 윌리엄스 등 수많은 이들이 흑인 민권을 위해 목숨을 걸고 불의에 맞섰다.
이 책에서는 남북전쟁이 끝나고 70년 이상 지난 뒤 정부가 파견한 조사 담당자들과 면담했던 옛 노예들의 이야기를 그들의 사진과 함께 만날 수 있다. 작가가 ‘노예 진술’이라고 통칭한 이 이야기의 화자들은 대부분 남북전쟁이 끝날 무렵 어린아이나 청소년이었으며, 1930년대 말 면담이 진행될 당시에는 이미 팔구십대에 이르는 노인들이었다. 가물가물한 기억 속에서도 노예 해방의 감격과 KKK의 폭력 앞에 느낀 두려움을 모두 간직한 이들의 이야기는 긴 세월과 그 속에서 겪어 내야 했던 고난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사진과 함께 독자들의 마음을 시큰거리게 한다. 링컨의 ‘노예해방선언’이 흑인들을 해방시킨 것이 아니라, 이들 한 사람 한 사람의 희생과 노력이 이만큼이나마 사회를 움직인 것이다. 한 여성 면담자의 마지막 말마따나 흑인 미국인이 공공연한 폭력에서 벗어나 “자유를 얻기까지 너무나 오래” 걸렸다.
■ 끝나지 않은 이야기, 그리고 우리 안의 KKK
2008년 미국에서는 흑백 혼혈인 오바마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흑인이 ‘백인과 같은 인간’으로 인정받기까지 너무나 오랫동안 온갖 질곡이 있었던 미국에서 이는 무척이나 이례적이고 상징적인 역사적 사건이었다. 수많은 흑인 미국인들이 눈물을 흘렸고, 인종 문제에 대해 더 큰 희망을 품게 되었다.
그러나 흑인이 대통령이 되고 KKK가 재건 시대만큼의 위세를 떨치지 못한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 “양탄자 아래로 먼지를 쓸어 넣”듯 덮어 버린 문제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다시금 밖으로 머리를 디밀게 마련이다. 흑인을 ‘잠재적 범죄자’로 보는 편견은 여전히 너무나 강력하게 미국 사회를 지배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무고한 이들이 목숨을 잃고 인종 갈등이 심화되는 문제는 여전히 심각하다. 사회학자 오찬호는 책에 실린 해제를 통해 이 문제를 보다 깊이 있게 이야기한다.
미국에서 흑인 남성이 경찰에 사살될 가능성은 백인 남성의 스무 배가 넘는다는 통계도 있다. 십대 흑인 용의자가 무방비 상태에서 경찰에게 수차례 총격을 당하고(마이클 브라운 사건, 2014년), 성인 흑인 용의자는 경찰의 제압 과정에서 ‘목이 졸려’죽는다(에릭 가너 사건, 2014년). 물론 백인 경찰은 기소조차 되지 않거나 재판에 가더라도 정당방위를 인정받는다. 법으로 차별을 금지해도 실제 일상의 차별은 여전하다. 사람들의 뇌리에 ‘박힌’ 정서는 좀처럼 희석되지 않고 이토록 생명력이 질기다. 지난 40년간 흑인의 실업률이 백인의 경우보다 항상 2.5배가량 높은 것은 이런 차별의 결과와 무관하지 않다. 특정 인종이 ‘하위 계층’에 집중적으로 몰려 있으면 이들에 대한 ‘부정적인’ 고정관념이 형성된다.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미국의 뉴올리언스 지역을 강타했을 당시 언론의 인종차별적 보도 행태는 이런 문제를 단적으로 보여 준다. 도시의 기능이 마비된 상태에서 발생하는 모든 ‘나쁜 짓’의 주범은 흑인들로 묘사된다. 흑인들이 손에 무언가 들고 물길을 헤쳐 나가고 있으면, 사실 확인도 없이 ‘식료품점을 약탈’looting a grocery store했다고 할 정도였다(AP통신). 하지만 백인이 그렇게 하면 ‘상점에서 빵과 음료를 발견해서’finding bread and soda from a local grocery store 물을 건너는 중이라고 보도한다(AFP통신). 똑같이 행동해도 인종에 따라 누구는 ‘약탈’이 되고 누구는 ‘발견’이 된다.
헌법이 모든 인간의 존엄을 보장하는 사회에서도 흑인들은 여전히 흑인의 목숨도 소중하다고 외쳐야만 한다. 정계와 언론과 문화가 편견을 조장하고 대중이 이를 비판 없이 받아들이는 이상, 법만 바뀐다고 해서 사회가 바뀌지는 않는다.
우리 사회는 어떠한가. 이주 노동자와 새터민, 다문화 가정에 대한 편견, 장애인과 성 소수자 차별, 맘충과 김치녀로 대표되는 이른바 ‘여혐’과 숱한 증오 범죄에 이르기까지 흑백 갈등만큼이나 날선 문제들이 산재해 있다. 차별에 대한 법적 정의도, 혐오 및 증오 범죄에 대한 어떤 입법적 조치도 마련되지 않은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약자의 권리 찾기를 내 권리의 침해 또는 상실로 오인하는 분위기 속에서 우리 안의 KKK는 언제 어떤 모습으로 튀어나와 누구를 공격하고 어떻게 사회를 병들게 할지 알 수 없다. KKK는 먼 나라의 과거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 우리를 날카롭게 비추는 거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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