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물고기 - 왕웨이롄 지음, 김택규 옮김/글항아리 |
바링허우의 대표 작가 왕웨이롄의 소설 국내 첫 소개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되는 중국 작가 왕웨이롄의 중단편집 『책물고기』가 묘보설림 시리즈 제4권으로 출간되었다. 왕웨이롄은 1982년생으로, 30대 중반을 지나고 있는 중국 바링허우 세대를 대표하는 작가다. 바링허우八零后란 덩샤오핑의 ‘한가구 한자녀 정책’ 실시 이후인 1980년대에 출생한 세대를 뜻하는 용어로, 대부분 외동이며 개혁개방시기에 성장하여 반항적이고 개성 있으며 의식 있는, 물질적 풍요를 누리며 성장한 세대라고 여겨진다. 이렇듯 젊은 작가를 대표하는 왕웨이롄은 2007년 「불법 입주」로 등단한 이래, 10년간 장편소설 『구원받은 자』와 중단편집 『내면의 얼굴』 『불법 입주』 등 40여 편의 중단편을 줄기차게 발표하며 활발한 창작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극소수의 잘 알려진 작가 몇몇을 제외하고는 동시대 중국 작가들에 대한 소개가 부족한 현시점에서, 왕웨이롄의 등장은 의미가 크다.
이야기 없는 시대의 이야기꾼
그의 중단편집 『책물고기』에 실린 다섯 편의 이야기는 각자 확연하게 다른 색채를 띠고 있다. 동료의 죽음에 대한 트라우마를 안고 소금 공장에서 일하며 살아가는 노동자, 몸속에 책벌레가 들어가 기이한 일을 겪는 출판편집자, 조상을 기리기 위해 긴 여행길에 나선 할머니, 광저우에 대한 열렬한 사랑을 지키기 위해 복수를 꿈꾸는 아버지, 10년 만에 첫사랑을 만나기 위해 베이징을 찾은 한 소설가의 이야기까지, 그의 인물들은 다채롭다.
「소금이 자라는 소리를 듣다」는 동료의 죽음으로 인한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한 공장 직원의 이야기다. 중국 서북 내륙의 고원 언저리에 소금호수가 있다. 소금호수의 노동자가 되어 소금호수 앞에 선 주인공은 세상이 아득하기만 하다. 그곳에선 소금이 자라는 소리가 들린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이곳에 어느 날 오래된 친구가 그의 여자 친구를 데리고 찾아오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순수한 아름다움에 대한 지향과 좌절이라는 이야기가.
「책물고기」는 첫 장을 펼치는 순간 카프카의 「변신」에서 모티프를 가져왔음을 드러내놓고 우리에게 알려준다. 어느 날 신비한 책벌레를 목격한 이후 목소리가 이상하게 변하는 등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섬뜩한 상황을 겪게 되는 주인공은 한의사를 찾아간 끝에 이 벌레가 자신의 몸속으로 들어온 서어書魚임을 알게 되고 몸에서 쫓아내는 신비한 경험을 한다. 언뜻 보기에 한 사람이 겪은 우스꽝스러운 우화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현대적 삶의 탈신비성이라는 묵직한 문제가 숨겨져 있다.
평범한 제목과는 달리 「걸림돌」은 상하이에서 평생 살아온 유대인 할머니와 삼십 대 젊은이가 기차에서 수다를 떠는 설정이다. 그 둘은 대화가 통하는데, 우선 할머니의 중국어가 유창하기 때문이고, 젊은이에겐 눈이 파란 유대계 노인에게 들려줄 친할머니의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의 대화를 따라가다보면 중국을 시작으로 홍콩, 오스트리아, 제2차 세계대전까지 오가게 되고 모른 척 잊을 수 없는 사람들의 삶이 걸림돌처럼 목에 걸려온다.
「아버지의 복수」와 유일한 중편인 「베이징에서의 하룻밤」은 또 결이 조금 다른 이야기들이다. 북방 출신이지만 태어날 때부터 광저우에 살아온 아버지는 자신을 진짜배기 광저우인이라 자부하지만, 베이라오(광둥 지역 사람들이 북방에서 일하러 온 노동자를 폄하하여 부르는 말)라고 회사에서 쫓겨나는 등 차별을 받는다. 하지만 광저우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은 멈추지 않고, 소설의 마지막에서 아버지는 이해할 수 없는, 아니 우리가 감히 상상할 수 없는 방법으로 자신을 베이라오 취급한 사람들에게 ‘복수’를 해낸다.(「아버지의 복수」) 코끝이 찡해지는 연애소설 「베이징에서의 하룻밤」에서도 광저우라는 지역 정체성은 이어진다. 광저우 출신 두 남녀가 베이징에서 재회하면서 시작되는 이 작품에서는 글쓰기와 작가의 정체성이라는 문제의식이 작품의 긴장감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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