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증발 - 레나 모제 지음, 스테판 르멜 사진, 이주영 옮김/책세상 |
2011년 원전 사고가 발생한 이후, 후쿠시마에서 방사능에 오염된 흙과 먼지를 포대에 담아 한곳에 모아두는 일을 하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1년치 방사능 허용치의 여덟 배가 넘는 그곳에서 방사능에 그대로 노출된 채 작업을 하고 있다. 후쿠시마에서 이처럼 위험한 작업을 하고 있는 이들은 대부분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다 해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즉 모두에게 잊힌 존재이자 스스로 과거를 지우고 사회의 그림자가 된 사람들이다. 이들은 누구이고 어디에서 왔을까.
세계 3위의 경제 대국, 일본의 수도 도쿄 안에 침묵이 가득하고 사회 규범이 통하지 않는 유령 같은 세계가 존재한다. 에도시대에는 범죄자들을 처형했던 곳이며 도살장으로 사용되다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일본에서 가장 큰 규모의 인력시장이 섰던 곳, ‘산야山谷’다. 산야는 일본 정부가 지도에서 일부러 지명을 삭제한 곳이며 택시 기사들조차 손님을 태우고 가기를 꺼리는 불길한 곳이다. 산업과 무역의 중심지 오사카에도 ‘가마가사키釜ケ崎’라는 산야와 비슷한 곳이 있다. 이곳에 과거를 지우고 스스로 사라진 사람들이 모여든다. 이들 도시에는 정상적인 삶을 누릴 수 없는 사람들이 살고 있다. 그들은 왜 산야, 혹은 가마가사키로 올 수밖에 없었는가.
“더 이상 어머니를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어머니는 제게 모든 것을 주었지만 전 어머니를 돌볼 수 없었습니다.” 1990년대 중반의 어느 봄날 새벽, 유이치는 저렴한 모텔을 알아본 후
병든 어머니를 그곳에 버리고 그대로 달아났다. 쓰레기 채집과 막일을 전전하다가 산야의 이 작은 모텔을 관리하는 일을 맡게 되었다. 그는 2층의 사무실과 투숙객들 사이에서 사는 현재의 삶이 편하다. 산야의 주민 중 몇 명이나 야반도주해서 왔는지, 가명을 사용하는 사람은 얼마나 되는지, 정부의 지원도 전혀 받지 못하고 자급자족하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되는지 아무도 알지 못하고 별로 관심도 없다. 여기서는 모두가 철저한 무관심 속에서 죽어갈 것이다. - 본문 85쪽
얼음장처럼 가혹한 현실 앞에 ‘증발’한 사람의 운명은 둘 중 하나다. 비명횡사하거나 영영 잊히거나. 다른 길은 없다. 일본에서는 1년에 3만 3,000명, 하루 90명 정도의 사람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그 외의 사람들은 사회의 그늘, 산야로 흘러든다. 골목마다 쓰레기가 널려 있고 지린내와 술 냄새가 진동하는 산야에서 증발한 사람들은 과거와 함께 희망을 지우고 하루하루 살아간다. 저마다 다른 아픔과 이야기를 가지고 있지만 대부분은 죽음의 문턱까지 다녀온, 혹은 그 언저리에 있는 사람들이다. 사회의 가장 밑바닥까지 떨어져 무서울 것 없는 일용직 노동자들이 비양심적인 고용인과 위험한 거래를 한다. 그리고 그곳에 야쿠자가 있다. 야쿠자는 절망에 빠져 사는 사람들을 이용해 돈을 번다. 증발한 사람들은 그렇게 죽음의 땅, 후쿠시마로 흘러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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