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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도서

소년을 위한 사랑의 해석 - 이응준 연작소설집

by 글쓰남 2017. 6.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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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을 위한 사랑의 해석 - 10점
이응준 지음/문학과지성사

소설가이면서 시인, 영화감독, 정치.사회.문화 비평가로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이응준 작가가 열번째 소설 『소년을 위한 사랑의 해석』을 펴냈다. 또 다른 연작소설집인 『밤의 첼로』 이후 4년 만에 펴내는 소설이며, 장편소설과 시집, 산문집 등을 통틀어 열여섯번째 책이다. 여섯 편의 단편소설과 세 편의 짧은 소설로 엮인 이번 연작소설집은, 대체로 2013년 이후 문예지에 발표된 소설들을 한 자리에 모은 것. 외따로 떨어져 빛나는 별이되 호명하는 이들에 의해 별자리로 불리듯이, 아홉 편의 소설들은 단편이면서 또 다른 의미에서의 장편인 ‘연작장편소설’로 읽히기도 한다. 퍼즐을 맞추듯 한 편 한 편을 읽다 보면, 독자들은 어느새 커다란 모자이크 벽화 앞에 서 있는 듯한 환상을 목도하게 될 것이다. 


적실한 의미로서 ‘소년을 위한 사랑의 해석’은 ‘소년의/소년에 의한/소년을 위한 사랑의 해석’일 터. 「작가의 말」에서 언급되었듯, 소년은 “사랑에 대한 질문을 포기하지 않는 누군가라면, 그 소년은, 그러니까 당신의 소년은, 다름 아닌 당신”인 바로 그 소년이다. 그리하여 이번 연작소설집은 “아수라 같은 사랑을 끌어안고 노래하는 만큼은 분명히 성장하는 모든 인간들의 총칭”(pp. 274~75)인 소년들이, 사랑하고 이별하는 극단의 와중에 ‘죽음 충동’과 함께 ‘삶에의 강한 의지’를 되찾는 이야기들로 빼곡하다. “내용적으로나 형식적으로나 이란성 쌍둥이”인 『밤의 첼로』가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의 빛과 어둠이 서로 은밀히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주”었다면, 『소년을 위한 사랑의 해석』은 ‘사랑과 이별, 그리고 죽음과 삶을 가로지르며 엮인 인연들의 거대한 청홍사(靑紅絲) 실타래’처럼 보인다. 



소설은 「북극인 김철」에서 김철이 「그들은 저 북극부엉이에게 아무것도 해준 것이 없다」의 화자인 은상길을 구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정작 자신도 자살을 위해 한강철교에 갔으면서, 그는 오재도 형사에게 쫓겨 일본행 여객선에서 뛰어내려 ‘민들레 꽃씨들’을 뿌리고 나서야 바닷속으로 들어간다. 「북쪽 침상에 눕다」의 화자인 남승건은 오재도 형사를 사적으로 고용해, 그로부터 친모가 얼마 전 호스피스 수도원에서 숨을 거뒀다는 사실을 듣게 된다. 아울러 그녀가 거둬 키운 아들이 작가라는 것도 알게 되는데, 그가 바로 「소년은 어떻게 미로가 되는가」의 화자 이은파이다. 이은파는 「떠나는 그 순간부터 기억되는 일」의 화자인 ‘천재 탈북 청소년 리신적’의 세번째 자살을 막아준 장본인이고, 리신적은 「전갈의 전문」의 화자인 강해선과 함께 ‘외눈박이 검은 도둑고양이’를 살리거나 보살펴주는 인물이다.

극단의 혁명가인 강해선이 삶에의 의지를 불태우며 번역하고 있는 『소년혁명』의 원고는 「그림자를 위해 기도하라」의 화자인 정이섭 역시 번역하고 있는데, 그는 시인인 안희언으로부터 자극받아 『새로운 시대의 종말론』을 집필하게 된다. 안희언과 연인 관계였다가 헤어진 뒤 이혼하고 전임교수 자리까지 사임한 한승영이 「소년을 위한 사랑의 해석」에서 정독 중인 책이 바로 『새로운 시대의 종말론』인데, 이 책은 동성애자임을 숨기기 위해 국회의원직까지 마다한 조근상의 자살을 막는 데 일조한다. 한편 한승영이 조근상과 조우한 필리핀의 외딴섬 앞바다에 둥둥 떠 있을 때, 그의 가슴께까지 다다른 것이 ‘한 송이 흰 민들레꽃’이다. 그건 마치 여러 차례 꼬아진 뫼비우스의 띠에 그어진 긴 선이 안과 밖을 돌아 마침내 첫 지점에 가 맞닿는 것처럼, 저 ‘북극인 김철’이 뿌렸던 ‘민들레 꽃씨들’로 가서 맞닿게 되는 셈이다. 


김철이 일본행 여객선에서 뛰어내린 것, 남승건의 아버지가 사막의 모래 폭풍 속으로 사라진 것, 이은파의 아버지가 중국행 유람선에서 투신한 것, 이은파의 외삼촌인 문장규가 고층 아파트에서 투신한 것, 그리고 세 번의 자살을 기도했던 리신적이나, 자살까지 생각하고 파라티온을 챙겨왔던 조근상 등등…… 『소년을 위한 사랑의 해석』 속에는 죽음과 죽음의 그림자가 많고도 흔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자살에 대한 다면적인 관찰 보고서와도 같은” 이 연작들이 “결코 자살에 관한 우울한 이야기 모음집이 아니”라는 사실 역시 자명하다. “어찌 보면, 자살 충동에 이끌리는 사람들에 대한 깊고 애정 어린 관찰과 이해의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그 충동에서 벗어나는 사람들에 대한 여전히 깊고 애정 어린 관찰과 이해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이응준의 이번 연작소설집이 갖는 의미를 찾아야 할 것이다”(장경렬, p. 266). 그리고 그러한 ‘삶과 죽음’ 사이를 가로지르는 ‘사랑과 이별’ 역시 간과할 수 없는 ‘이응준식 사랑의 해석법’일 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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