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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도서

불평등의 역사 / 발터 샤이델

by 글쓰남 2017. 10.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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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등의 역사 - 10점
발터 샤이델 지음, 조미현 옮김/에코리브르

억만장자가 몇 명 있어야 세계 인구 절반의 순자산과 맞먹을까? 2015년에는 지구상 최고 부자 62명이 인류의 절반인 하위 35억 명의 개인 순자산을 합친 것만큼 소유했다. 전년도(2014년)에는 그 문턱을 통과하는 데 억만장자 85명이 필요했고, 아울러 그리 오래 전도 아닌 2010년에는 지구상 나머지 절반의 자산을 상쇄하려면 388명이 자기의 재원을 그러모아야 했다.

서두에 이런 내용을 언급하는 것은 평화가 오래 지속될수록 빈부의 격차는 커지며, 부와 소득이 더 집중된다는 사실을 말하기 위함이다. 물론 빈부 격차는 국가 간 차이도 있을 수 있고, 한 국가 내에서도 서로 다를 수 있다. 그렇더라도 평화스러운 시간이 오래 지속될수록 빈부의 격차가 커진다는 사실엔 변함이 없다.


그런데 물질적 불평등은 우리 모두를 살아 있게 하는 데 소용되는 최소한도 이상의 자원에 대한 접근성을 필요로 한다. 잉여란 수만 년 전에도 이미 존재했으며, 그것을 불균등하게 나눌 채비가 된 인간들 역시 항상 있었다. 옛날 마지막 빙하기의 수렵·채집인은 시간과 재물을 할애해 어떤 개인을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더 호화롭게 매장했다. 그러나 전적으로 새로운 차원에서 부를 창출한 것은 바로 식량 생산―농경과 목축―이었다. 불평등의 증가와 지속은 충적세(沖積世)를 규정하는 특징이 됐다. 작물 재배와 가축 사육으로 생산 자원을 축적하고 보존하는 일이 가능했다. 이런 자산에 대한 권리를 규정하기 위해 사회 규범이 발전했고, 여기에는 후손에게 그것을 전해주는 능력도 포함됐다. 이러한 조건 아래 소득과 부의 분배가 다양한 경험에 의해 형성되기에 이르렀다. 요컨대 건강, 결혼 전략과 번식 성공, 선택적 소비와 투자, 대풍년, 메뚜기 떼와 우역(rinderpest, 牛疫: 소나 그 비슷한 동물에게 발생하는 전염병―옮긴이) 등이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전해질 재산을 결정했다. 운과 노력의 산물은 시간의 경과와 더불어 장기적으로 불균등한 결과를 초래했다.



물론 이론상으로는 체제가 물질 자원의 배분과 노동 결실의 균형을 바로잡기 위해 고안한 개입을 통해 막 고개를 쳐들던 격차를 고르게 다질 수 있었을 것이다. 일부 전근대 사회가 실제로 시행했다고 알려진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사회적 진화는 일반적으로 현실에서는 역효과를 가져왔다. 식량의 가축화는 또한 길들여진 인간을 만들었다. 고도로 경쟁적 조직 형태인 국가의 형성은 소득과 부에 대한 접근 기회를 편중시키는 가파른 권력 위계와 강제력을 구축했다. 정치적 불평등은 경제적 불평등을 강화하고 증폭시켰다. 대부분의 농경 시대에 국가는 다수를 희생시켜 소수의 배를 불렸다. 급료와 공공 서비스 혜택에서 오는 이익은 부패, 갈취, 약탈로 얻는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결과적으로 많은 전근대 사회는 성장과 더불어 최대한 불평등해졌고, 낮은 1인당 생산량과 최소 성장이라는 조건 아래서 소수 엘리트들이 잉여를 전용하는 한계를 시험했다. 그리고 좀더 온건한 체제가 더 왕성하게 경제 발전을 촉진할 때―이는 부상 중이던 서구에서 가장 두드러졌다―높은 상태의 불평등은 끊임없이 지속됐다. 도시화, 상업화, 금융 부문의 혁신, 갈수록 세계적 규모를 갖추어 가는 무역 그리고 마지막으로 산업화는 자본 소유자들에게 풍성한 수익을 안겨줬다. 노골적 권력 행사에서 비롯된 지대(rent, 地代)가 줄어들어 엘리트를 살찌우던 전통적 원천이 차단되자 좀더 안전한 재산권과 국가 공약이 세습적인 개인 자산의 보호를 강화했다. 경제 구조, 사회 규범 및 정치 제도가 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소득과 부의 불평등은 여전히 높거나 아니면 새로운 성장 활로를 찾았다.


수천 년 동안 문명은 평화적인 평등화에 적합하지 않았다. 안정은 다양한 사회와 각기 다른 발전 수준을 망라해 경제적 불평등을 편애했다. 이는 빅토리아 시대의 영국에서처럼 파라오의 이집트에서도 그랬고, 미국에서와 마찬가지로 로마 제국에서도 그러했다. 기존 질서를 붕괴시키고 소득과 부의 분배를 압박해 빈부 격차를 좁히는 데는 격렬한 충격이 그 무엇보다 중요했다. 역사를 통틀어 가장 강력한 평준화는 예외 없이 가장 강력한 충격으로 인해 발생했다. 네 가지 다른 종류의 격렬한 분출이 불평등의 벽을 허물어왔다. 요컨대 대중 동원 전쟁, 변혁적 혁명, 국가 실패 그리고 치명적 대유행병이 그것이다. 저자는 이것들을 ‘평준화의 네 기사(騎士)’라고 부른다. 이것들은 성경의 4인방처럼 “땅에서 평화를 거두”고 “칼과 굶주림과 흑사병과 들짐승으로 사람들을 죽”였다. 이것들은 때로는 독자적으로 움직이고 때로는 서로 협력하며 현대인에게 흔히 묵시록이나 다름없어 보이는 결과물을 양산했다. 수억 명이 이것들의 뒤를 따라 목숨을 잃었다. 그리고 사태가 잠잠해질 때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사이의 간극이 줄어들었다. 가끔은 극적일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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