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의 계승자 2 : 가니메데의 친절한 거인 - 제임스 P. 호건 지음, 최세진 옮김/아작 |
SF 작가는 필연적으로 작가이자 과학자, 탐험가여야 한다. 그리고 인류학자여야 한다. 직업적인 학자여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새로운 인구 집단과의 최초의 만남이라는, 인류학이 한창 성립되던 시기에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일의 우주 버전을 선취해 쓰는 작가로서, SF 작가는 (확장된 의미의) 인류학자일 수밖에 없다. 이 선언에 따른다면 이 책의 저자 제임스 P. 호건은 탁월한 지적 탐험가이자 인류학자로서 재능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자신의 데뷔작이자, 시리즈의 시작을 알린 《별의 계승자》에서 호건은 이미 과학자로서의 능력을 끝까지 보여준 바 있다. 달 탐사 중에 발견된 의문의 시체 하나, 그것을 단서로 삼아 과학자들이 가설을 세우고 토론해 가며 인류 이전의 우주 생명 역사를 새롭게 구성해 가는 과정은 과학자 커뮤니티에서 벌어지는 전형적인 논쟁 과정과 닮았다. 새로운 발견이 한창 이뤄지는 분야의 학회에 가보면, 크고 작은 연구 성과가 공격적으로 발표되고 거기에 다른 과학자들이 논평을 덧붙이고 질문하는 방식으로 지식이 형성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 과정은 호의적일 때도 있지만, 때론 무척 적대적이고 공격적이며 심지어 제3자의 눈에는 무례해 보이기도 한다.
은발 무성한 노과학자의 발표에 티셔츠를 걸친 대학원생이 “제 생각은 다른데요.”라며 덤비
는 일쯤은 흔하다. 논리와 증거의 이름으로 엄밀한 과학을 만들고자 모인 이 사람들의 ‘계급장 뗀’ 대화 덕분에 사소한 지식 한 자락이 만들어지는데, 이 지식은 현재 지구 상에서 누구도 가지 못한 미개척의 영역을 한 뼘 밝히는 지식이 된다. 우리가 알고 있는 많은 과학적 ‘정설’들은, 대중들은 미처 살펴보지 못하는 이런 전문적인 학회에서 이뤄진 숱한 논쟁과 그 결론의 일부가 논문으로 다듬어져서 만들어진다.
호건은 과학자 커뮤니티에서나 관전할 수 있던 이 장면을 과감히 장편 SF에 도입했다. 그냥 흉내만 낸 수준이 아니라 꽤 근사하다. 그가 뛰어난 과학자의 마음을 가졌다고 믿는 이유다. 그뿐만 아니라 인류학자의 눈을 가졌다. 자신이 속하지 않은 집단의 생리를 방문자인 연구자의 시선으로 상당히 촘촘히 재구성해 내는데, 이것은 인류학의 연구 방법이기도 하다. 논의에 이용되는 과학 지식과 전개 논리가 상당히 정확한 데다 적절한 맥락에 쓰여 소설은 심지어 수준 높은 과학기사를 읽는 것 같기도 하다. 논쟁으로 구성된 부분의 분량이 상당함에도 한결같이 속도감이 있고 재미있다. 한창 형성되고 있는 지식이나 기술을 그 분야의 대가나 이름난 과학 기자가 한 차례 정리하며 책을 내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책들 중 잘 쓰인 책을 읽을 때 받는 것과 비슷한 느낌도 언뜻 든다. 학계에서 논쟁과 토론 과정을 거치며 맞는 반전들이 주는 재미랄까. 그런 걸 저자는 참으로 오롯이 잘 살려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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