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쳤다는 것은 정체성이 될 수 있을까? - 모하메드 아부엘레일 라셰드 지음, 송승연.유기훈 옮김/오월의봄 |
‘광기’의 또 다른 이름은 언제나 부정적인 무엇이었다. ‘비정상’ ‘비이성’ 등과 같은 그 명명들은 광기의 이름이자 동시에 낙인이었다.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관점에 따르면, 광기는 생물학적·심리적·사회적 요인 등의 상호작용으로 야기되는 정신질환에 해당하며, 조현병, 양극성 장애, 정신증 등과 같은 하위 유형으로 분류된다. 그러나 이런 식의 의료적 관점은 광기에 대한 다양한 문화적 상상력을 강하게 억압할 뿐 아니라, 광기가 지닐 수 있는 창조적 힘을 외면한다. 즉 지금 우리가 만나고 있는 광기는 치료 및 교정해야 할 병리적 대상으로서, 철저히 의료적 임상 현장에 종속되어 있다.
다른 한편, 지배적인 의료적 관점의 반대편에는 ‘정신질환’이라는 낙인과 꼬리표에 맞서 광기의 경험에 귀를 기울이고 그 생생한 언어를 되찾고자 하는 정신장애인 당사자들이 있다. ‘매드 프라이드mad pride’ 정신을 바탕으로 세계의 여러 지역에서 각양각색의 방식으로 전개되고 있는 매드운동은 광기의 의료화 흐름에 저항하며 강제치료, 회복을 위한 서비스의 부재, 사회적 낙인 및 차별 등의 문제에 활발히 개입한다. 매드운동의 가장 중요한 의제는 광기에 대한 사회문화적 존중과 인정을 이끌어내는 것이다. 이런 관점으로 접근하면, 근본적인 차원에서 사고 전환이 이뤄진다. 흔히 긍정적인 정체성에 대한 모욕으로 일컬어지는 광기를 교정하는 것이 아니라, 광기를 마음의 질환으로 바라보는 의료적 관점과 정신의학을 개혁하는 것이 대안으로 부상한다.
정신과 의사로서 철학과 인류학을 공부한 저자 모하메드 아부엘레일 라셰드는 ‘미쳤다는 것’, 즉 광기가 하나의 정체성으로 인정받기 위해 어떤 사회적 요건들이 필요한지 세밀히 논증하고 탐구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 광기라는 현상을 두고 정신의학과 당사자들의 매드운동이 팽팽히 대립하는 현실이 이 책의 배경을 이룬다. 저자는 매드운동과 그 당사자들이 진정한 사회적 인정을 획득하고 자신의 역량을 한층 더 끌어올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그 운동의 주장은 물론 그에 회의감을 드러내는 정신의학의 관점 모두를 꼼꼼히 살펴야 한다고 역설한다. ‘매드 프라이드’로 대표되는 당사자운동에 대한 깊은 존중의 태도로 일관하는 저자는 그 운동을 그저 옹호하는 손쉬운 방편 대신, 당사자운동과 그 반대편 그 모두의 입장을 톺아보는 길고 험난한 여정을 택한다.
매드운동은 정체성, 자아, 행위주체성, 합리성에 대한 우리의 지배적 관점에 의문을 제기한다는 점에서 하나의 귀중한 문화적 자원이며, 지금처럼 광기를 의료적 틀 안에 가두는 것이 (잠재적) 당사자들을 부당하게 배제하는 일은 아닌지 검토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매드 정체성에 대한 무조건적 인정을 강요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그런 방식으로는 광기에 대한 부정적 편견을 전복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대립하는 두 집단 혹은 관점이 ‘화해의 태도’를 가지고 대화를 시작할 때, 그리고 그 대화를 통해 서로에 대한 깊은 이해에 기반한 화해를 이뤄낼 때, 대항적 광기 서사는 진정한 의미를 갖게 될 것이다. 이 책은 사회구성원으로서의 우리 모두를 그 ‘대화’로 이끄는 초대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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