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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식가의 허기 - 박찬일 지음/경향신문사 |
그는 광화문 무국적 술집 ‘몽로’와 서교동의 ‘로칸다 몽로’를 오가면서 요리를 하는 주방장이다. 남들은 ‘셰프’라고 부르지만 그는 한사코 ‘B급 주방장’이라고 말한다. 매일매일 광화문과 서교동을 오가면서 면벽수도 하듯이 제철 재료로 박찬일식 요리를 한다. 틈나는대로 세상의 먹거리와 먹고 사는 일을 소재로 글을 쓴다.
그가 먹고 사는 일의 지엄함을 얘기한 에세이집 <미식가의 허기>(경향신문)를 펴냈다. 이 책은 그동안 경향신문에 연재한 ‘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을 토대로 엮었다. 봄부터 겨울까지 사계절이 뚜렷한 이 나라의 주방장으로서 보고, 느끼고, 만져본 이야기를 때로는 뜨거운 돼지국밥처럼, 때로는 맛있는 닭튀김처럼 쫄깃한 문장으로 세상 사람들에게 이야기한다.
이 책은 요리에 대한 가이드북도, 대단한 요리철학이 담긴 이론서도 아니다. 이땅의 장삼이사들이 사계절의 뒷골목에서 고단한 삶을 잠시 쉬면서 위안을 삼아온 먹거리에 대한 헌사다. 또 그 재료를 생산하기 위해 바다에서, 들판에서, 산에서 일하는 농부와 어부, 산꾼에 대한 기록이다. 그 신선한 재료로 수많은 음식점의 주방에서 한 끼의 식사를 위해 일하는 주방노동자에 대한 애정이 듬뿍 담긴 에세이다. 그는 이 땅의 ‘B급 주방장’으로서 책의 서문에서 이렇게 말한다.
“… 나는 냉면을 내리던 옛 제면 노동자의 무너진 어깨를 생각한다. 화상으로 가득한 요리사의 팔뚝을 떠올린다. 칼에 신경이 끊어진 어떤 도마 노동자의 손가락을 말한다. 그뿐이랴. 택시 운전사의 밥때 놓친 위장과 야근하는 이들의 무거운 눈꺼풀과 학원 마치고 조악한 삼각김밥과 컵라면 봉지를 뜯는 어린 학생의 등을 생각 한다. 세상사의 저 삽화들을 떠받치는 말, 먹고살자는 희망도 좌절도 아닌 무심한 말을 입에 굴려본다.
아비들은 밥을 벌다가 죽을 것이다. 굳은살을 미처 위로받지 못하고 차가운 땅에 묻힐 것이다. 다음 세대는 다시 아비의 옷을 입고 노동을 팔러 새벽 지하철을 탈 것이다. 우리는 그 틈에서 먹고 싸고 인생을 보낸다. 이 덧없음을 어찌할 수 없어서 소주를 마시고, 먹는다는 일을 생각한다. 달리 도리없는 막막함을 안주 삼아서. …”
그래서 이 책은 읽는 이들에게 맛있는 음식에 대한 미각을 자극하기 보다는 삶의 허기를 느끼게 한다. 먹고 사는 일이야말로 우리네 삶의 본질임을 깨닫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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