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어 랄프 로렌 - 손보미 지음/문학동네 |
단 한 권의 소설집 『그들에게 린디합을』(문학동네, 2013)로 “지나치게 능숙해서 가끔 의심스럽다는 비평가의 불평을 아무나 들을 수 있는 건 아니다”(문학평론가 신형철)라는 평과 함께 문단과 독자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온 젊은 작가의 기수 손보미의 첫 장편소설 『디어 랄프 로렌』이 출간되었다. 「폭우」(제3회 젊은작가상 대상 수상작), 「산책」(제46회 한국일보문학상 수상작) 등의 작품을 통해 ‘말로 규정하지 않고 침묵으로 환기하는’ 절묘한 스타일과 플롯에 대한 정교한 감각의 힘을 유감없이 보여주며 빠르게 자신만의 소설문법을 구축한 손보미이기에, 그가 쌓아올릴 장편의 세계에 대한 기대가 모아진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2015년 여름부터 2016년 봄까지 계간 『문학동네』를 통해 연재된 『디어 랄프 로렌』은 인생에서 크게 실패한 젊은 물리학도가, 까맣게 잊고 있었던 청첩장을 발견하면서 시작된다. 십 년 전 고등학생 시절과 현재를 오가는 기억의 활동을 통해, 어떤 기억은 오랜 시간 잠복해 있다 정확한 순간에 찾아와 우리를 비참 속에서 건져올리기도 한다는 것을 이 벅찬 기억의 서사는 증명해 보인다.
랄프 로렌에게 편지를 보내고 싶어하는
여자아이를 도와주고 싶은 마음,
그런 것도 사랑일 수 있을까
미국에서 유학생활을 한 지 구 년째가 되던 해, ‘종수’는 대학원 지도교수에게서 다음과 같은 말을 듣게 된다. “자네 실력이 나쁘다는 게 아니야. 자네는 잘했어. 단지 여기와는 어울리지 않는 것뿐이야.” 빙빙 돌려 말했지만, 종수는 그 말이 대학원에서 나가달라는 의미라는 걸 안다. 탄탄대로를 걸어오던 이십팔 년 인생 최악의 상황과 맞닥뜨리게 된 것이다. 집으로 돌아와 술을 퍼마시며 방안을 헤집던 도중, 종수는 잠겨 있는 책상 서랍을 발견하게 된다. 망치를 내리쳐 서랍을 열자, 뜻밖에도 그 안에는 청첩장이 담겨 있었다.
“디어 종수, 나는 아주 잘 지내. 곧 결혼식을 올릴 거야. 나는 무척 행복해. 너도 잘 지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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