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고통은 나뭇잎 하나 푸르게 하지 못한다 - 이성복 지음/문학동네 |
치유할 길 없는 병과 허무의 고통 속에서
살아 있음을 증명하기 위해 벼린
시에 대한, 예술에 대한, 삶에 대한 잠언
1977년 『문학과지성』에 「정든 유곽에서」를 발표하며 등단한 이후, 일상의 기저에 자리한 슬픔과 고통의 근원을 형태파괴적이면서도 섬세한 시어로 구축해온 시인 이성복의 아포리즘을 모아 엮은 『네 고통은 나뭇잎 하나 푸르게 하지 못한다』(2001)의 개정판이 출간되었다. 이전 판본이 1990년 도서출판 살림에서 발간된 『그대에게 가는 먼 길』의 일부를 간추려 엮은 축약판이라면, 새로이 선보이는 이 책은 예의 전문을 되살리고 몇몇 구절을 다듬어 ‘이성복式 가치체계’를 더욱 명확히 양각한 확장판인 셈이다.
“해변에서 바라보는 바다와 바다 한가운데서 바라보는 바다는 전혀 다르다. 살아 있는 내가 죽어 있는 나에 대해서도 그렇게밖에 보지 못한다면, 무엇 때문에 살아야 하는가. 왜냐하면 내 삶은 죽음을 억압하는 일―내 뚝심으로 죽음을 삶의 울타리 안으로 밀어넣는 노력 외에 다른 것이 아니므로. 어느 날 죽음이 나비 날개보다 더 가벼운 내 등허리에 오래 녹슬지 않는 핀을 꽂으리라. 그래도 해변으로 나가는 어두운 날의 기쁨, 내 두 눈이 바닷게처럼 내 삶을 뜯어먹을지라도.”
“아, 그는 그토록 바보 같을 수가 없었네. 그는 세상에, 세상의 병을 전하지 않았네. 세상 전체가 그를 옭아매는 형틀이었네. 아, 누가 멍든 괴로움 속에서 살고 싶지 않겠는가!”
“모든 내기를 시에 걸자. 들려오는 기차 소리와 늙어가는 어머니까지도…… 사랑은 죽음으로 이루어지리라”
그에게 아물지 않는 (아물까 두려운) 상처는 시의 힘이 되고, 치유할 길 없는 (치유하고 싶지 않은) 병과 허무는 살아 있음의 증거가 된다. 곪아터진 상처에는 무어라 형언하기 힘든 아포리즘적 감상이 고여 있다.
시, 예술, 삶에 대한 시인의 잠언은 시와는 또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그것은 이 아포리즘이 스스로에게 겨누어진 칼인 동시에, 그 말을 엿듣는 우리를 향한 칼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낯선 여관”과도 같은, 그래서 “머물러도 마음이 차지 않”는 그곳, 마음의 자리에서 시인은 이렇게 주문한다.
“지치거라, 지치거라, 마음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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