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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한때 천사였다 - 카린 지에벨 지음, 양영란 옮김/밝은세상 |
《빅 마운틴 스캔들》,《그림자》, 《너는 모른다》, 《마리오네트의 고백》을 발표하며 국내독자들과도 친숙한 카린 지에벨의 《그는 한때 천사였다Satan était un ange》가 출간되었다. 카린 지에벨은 2004년 등단 이후 현재까지 모두 합해 10권의 소설을 발표해오고 있는 작가로 코냑추리소설대상, SNCF추리소설대상, 엥트라뮈로스 상, 로망느와르소설 페스티벌 대상 등 프랑스 최고 권위의 추리문학상을 다수 수상할 만큼 성공적인 집필 활동을 해오고 있다. 카린 지에벨이 ‘프랑스 스릴러의 여왕’, ‘프랑스 심리스릴러의 아이콘’이라는 별칭으로 불리게 된 이유는 발표하는 작품마다 독자들에게 강렬한 인상이 남는 작품을 선보여 왔기 때문이다. 프랑스 독자들로부터 크게 각광받고 있는 카린 지에벨의 소설은 이제 자국은 물론 전 세계 여러 나라에서 번역 출간되고 있으며 다수의 작품이 영화로도 제작될 예정이다.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한 카린 지에벨은 변호사, 등하교 도우미, 지역 신문사에 기사나 사진을 기고하는 프리랜서 기자, 국립공원관리인, 맥도날드 점원, 공무원 등으로 일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카린 지에벨이 다양한 직업을 전전하고, 여러 사람들을 만나며 얻은 경험은 어릴 때부터 선천적으로 글쓰기를 좋아했던 작가적 소양과 어우러져 성공적인 작가의 길을 걸을 수 있게 한 자양분이 되었다.
카린 지에벨의 스릴러는 어떤 사건이 발생하고, 형사 또는 탐정이 수사를 펼쳐나가는 과정에서 추리를 통해 사건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내고 범인을 체포하거나 단죄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종결짓는 고전적인 방식을 취하기보다는 인물의 심리변화와 흐름에 초점을 맞춰 이야기를 전개해나간다. 한편 과거의 어느 지점에서 비롯된 경험과 상처가 현재의 심리상태를 이루는 바탕이 되었는지 추적해가는 과정을 소설의 중요한 포인트로 삼고 있기도 하다. 인간의 모든 행위에 인과율이 적용되는 건 아니지만 잔혹한 범죄를 저지르는 범죄자의 심리는 대개 성장 과정에서 비롯된 경험과 상처에서 형성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점을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카린 지에벨의 소설은 욕망, 불안, 집착, 죄의식, 피해의식, 열등감 등 인간의 내면에 잠재되어 있는 심리적 요소들을 분석해가는 과정을 통해 인물에 대해 보다 깊이 있는 이해를 가능하게 하는 한편 이야기를 심층적이고 풍성하게 만드는 효과를 얻고 있다. 인간심리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과 이해를 바탕으로 독창성 있는 작품을 추구하면서도 통속적인 재미 또한 놓치지 않는 게 카린 지에벨 소설이 독자들로부터 널리 사랑받는 이유라 할 수 있다.
《그는 한때 천사였다》는 국내에서 앞서 출간된 네 권의 소설과는 전개방식이 많이 다르다. 첫째, 이 소설은 스릴러이지만 주요인물 중 경찰이나 탐정이 등장하지 않는다. 물론 보조적인 인물로 등장하지만 사건에 대한 수사가 이야기의 중심축이 아니기 때문에 그 역할은 극히 제한적이다. 둘째, 앞서 출간한 소설의 배경이 밀실이나 좁은 지역으로 한정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번 소설은 이른바 ‘로드 무비’ 형식을 취하고 있기 때문에 프랑스의 다양한 지역이 소설의 배경이 되고 있다. 셋째, 카린 지에벨의 소설은 사이코패스 혹은 소시오패스를 주요인물로 삼는 경우 대부분인데 이 소설에서는 다중성격을 가진 인물이 등장하지 않는다. 넷째, 지금까지의 소설들이 지극히 개인 문제를 주로 다룬 반면 이 소설은 사회적 문제에도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카린 지에벨이 《그는 한때 천사였다》를 집필하게 된 동기는 매우 특별하다.
1994년 3월 10일, 이탈리아 여기자 일라리아 알피와 그녀의 카메라맨 미란 흐로바틴이 소말리아의 모가디슈에서 살해되었다. 일라리아는 유독성 폐기물의 국제적인 밀거래에 관해 취재 중이었으며 대대적인 폭로를 위해 충분한 증거를 확보했다. 일라리아 기자 살해사건에 관해서는 명확하게 밝혀진 게 없으며, 이 위대한 기자가 수집한 자료들은 모두 사라져버렸다. -<감사의 말> 카린 지에벨
유럽의 복수 국가에서 아프리카에 유독성 폐기물을 버리고 있다는 사실을 간파하고 취재에 나섰던 여기자가 살해되었고, 그녀가 탐사한 자료들도 사라졌다. 카린 지에벨은 유럽의 각국 정부와 경찰이 여기자의 죽음과 그녀가 취재한 내용들에 대해 수사하지 않은 이유가 무엇인지 주목했고, 이 소설을 집필하게 된 동기가 되었다. 물론 이 소설의 중심 내용이 유럽의 각국 정부, 다국적 기업, 경찰, 언론 등의 부도덕한 행위를 고발하고 질타하는 내용으로 채워지지는 않았지만 독특한 방식으로 천인공노할 사실들을 다루고 있는 것만큼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비즈니스 전문 변호사 프랑수아 다뱅은 가난한 집 출신이지만 계급 사다리 최상단으로 올라가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 결과 마침내 목표를 이루지만 청천벽력과도 같은 뇌종양 진단과 시한부인생을 선고받고 살아온 인생을 돌아보며 마지막 정리를 위한 여행을 떠난다. 히치하이킹을 통해 예기치 않게 프랑수아와 동행하게 된 폴은 마피아 조직에서 살인청부를 해온 킬러로 조직에서 훔친 마약을 팔아 인생을 바꿔보려는 인물이다.
전혀 다른 환경에서 살아온 두 사람이 어색한 동행을 해가는 동안 점차 교감을 이루어나가는 이야기와 여행 중 겪게 되는 다양한 사건들이 이야기의 중심축을 이룬다. 그들이 나누는 이야기 속에 여러 개의 액자처럼 등장하는 과거의 경험들은 두 인물에 대한 심층적이고 복합적인 이해를 돕기에 충분하다. 비즈니스 전문 변호사와 마피아 조직의 킬러라면 어느 모로 보나 전혀 일치되는 점이 없지만 그들의 과거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인간은 누구나 한때 천사처럼 순수했던 시절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정치인, 기업, 언론, 검찰, 경찰, 마피아 등이 한통속이 되어 부도덕한 범죄를 저지르고 덮어버리는 행위는 비단 한국사회에서만 만연해 있는 병폐는 아닌 듯하다. 프랑수아는 기업의 위법과 탈법 행위를 가려주는 대가로 고연봉을 수령하는 비즈니스 전문 변호사이고, 폴은 진실을 은폐하려는 사람들의 은밀한 목적을 해결해주는 킬러이다. 프랑수아가 유능한 비즈니스 전문 변호사가 되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한 이유는 가난에서 벗어나고 싶었기 때문이고, 폴이 마피아 조직의 킬러로 살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불우한 성장 배경의 탓이 크다. 그들의 불행을 등에 업고 승승장구하는 기업과 마피아 조직은 전혀 다른 집단이지만 은밀한 이익 추구를 위해 서로를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는 마치 숙주와 그에 기생하는 바이러스를 연상시킨다. 이 소설을 사회적 금기를 깨기 위한 폭로 소설의 범주에 넣을 수는 없지만 전하는 메시지만을 고려해볼 때 매우 신랄한 사회비판적 내용을 담고 있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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