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국내도서

패스토럴리아

by 글쓰남 2023. 4. 21.
반응형
패스토럴리아 - 10점
조지 손더스 지음, 정영목 옮김/문학동네

맨부커상 수상작 『바르도의 링컨』, 25년간의 창작 강의를 집대성한 『작가는 어떻게 읽는가』,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 『해방의 날Liberation Day』까지 읽는 이에게 즐거운 충격을 선사하는 혁신적인 작품들을 펴내며 미국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자리매김한 조지 손더스의 두번째 단편집 『패스토럴리아』(2000)가 출간되었다. 첫 단편집 『악화일로를 걷는 내전의 땅CivilWarLand in Bad Decline』으로 평단의 주목을 받으며 화려하게 데뷔한 손더스는 단편집 『12월 10일』로 전미도서상 최종 후보에 오르고 스토리상과 폴리오상을 수상하여 “현존하는 영어권 최고의 단편소설 작가”(<타임>)라는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패스토럴리아』는 손더스의 정수가 담긴, 풍자적이고 그로테스크한 6편의 단편으로 구성된 작품이다. 고유한 유머와 스타일이 돋보이는 이 소설집은 <밀리언스> 선정 2000년대의 위대한 책 5위, 2001년 <뉴욕 타임스> 선정 주목할 만한 책에 올랐다. 이 책은 현재 국내에서 만나볼 수 있는 손더스의 유일한 단편집이다.

표제작의 제목인 ‘패스토럴리아’는 ‘목가적’이라는 의미의 영단어 ‘패스토럴pastoral’을 아이러니하게 뒤튼 것으로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테마파크를 상징한다. 성경 모티프가 곳곳에 드러나는 이 테마파크는 선사시대를 조악하게 재현하고 있다. 자연물을 모방하고 인간을 구경거리로 삼아 보는 이에게 불쾌함을 일으키는 이곳은 그 자체로 소설집 『패스토럴리아』와 닮은 점이 있다. 이 책은 어딘가 부족하고 뒤틀린, 그래서 삶이라는 고통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된 자들의 울적한 하루하루를 그린다. 바깥세상과 격리된 가짜 동굴에서 동굴 인간 연기를 하는 남자(「패스토럴리아」), 죽은 이모의 한을 풀어주기 위해 몸을 파는 스트리퍼(「시오크」), 허상과 망상에 빠져 인생을 낭비하거나(「이발사의 불행」), 자격지심에 찌든 채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단어를 더듬더듬 수첩에 적어내는 사람(「폭포」)…… 우리가 차마 직시하기 두려워 보기를 포기해버렸던 사람들의 이상한 면면들이 계속해서 펼쳐지며 불쾌함의 테마파크를 조성한다.

“『패스토럴리아』가 그리는 세계는 우스꽝스러운 외피를 두르고 있지만 극도로 잔인하다. 그 세계에 사는 인간들은 어리석고 못됐고 천사이며 심오하다. 한마디로 우리를 닮았다. 그래서 그의 소설을 읽을 때마다 눈물이 나나보다.” _이미상(소설가)

하지만 진정 심오한 눈으로 이 작품을 들여다보면 그 불쾌한 감정은 서서히 변모한다. 작품 속 부적응자와 외톨이들의 삶에서 그리 낯설지 않은 점들을 계속 발견할 때, 어쩌면 우리 모두가 언젠가 한 번쯤 미치광이였다는 것을, 현실에서 벗어나려 망상에 빠져본 적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 때, 기이한 카타르시스가 느껴진다. 『패스토럴리아』는 우리로 하여금 전에 보지 못했던 것들을 비로소 볼 수 있게 하고, 때론 그 속에서 자기 자신을 발견할 수 있게 하며 모든 불편한 감정을 피하지 않고 되레 극대화하여 현실을 핍진하게 그려낸다. 깔깔깔 웃다가도 눈물이 나는 작품들을 하나씩 따라가다보면 그 모든 못난 세상의 못난 자들이 너무 싫고 너무 좋은 나머지 그들의 세상으로 속수무책 빨려들어가게 된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