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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도서

사랑이 한 일 - 이승우

by 글쓰남 2020. 11.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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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한 일 - 10점
이승우 지음/문학동네


다섯 편의 작품이 담긴 이번 소설집은 작가가 밝힌 의도처럼 이삭을 제물로 바치는 아브라함의 이야기를 다룬 표제작 「사랑이 한 일」을 한가운데 두고 시간순으로 앞뒤에 두 편씩이 더 배치되어 있다. 자기 딸을 불량배들에게 내주는 소돔성의 롯의 이야기인 「소돔의 하룻밤」, 아들 이스마엘과 함께 부당하게 내쫓기는 하갈의 이야기 「하갈의 노래」가 앞의 두 편, 이삭이 느끼는 기묘한 허기와 그의 쌍둥이 아들 야곱과 에서를 향한 편애에 대한 소설적 해설이라 할 수 있는 「허기와 탐식」 「야곱의 사다리」가 뒤의 두 편이다.

모티프로 삼은 「창세기」의 골자들은 그대로 둔 채 작가가 의문을 품은 지점, 그리고 그것을 풀어나가는 방식에 주목해보자. 맨 앞자리에 놓인 「소돔의 하룻밤」과 표제작 「사랑이 한 일」은 우선 독특한 문체로 독자를 사로잡는다. 「소돔의 하룻밤」의 경우 소돔의 멸망 과정을 보여주는 다섯 개 장면의 문장이 반복된다. 그 뒤에 이어지는 것은 소설의 문장이라기보다는 논리적 변증에 가까운 치밀하고 끈질긴 문장들이다. 성경 텍스트 속 서사의 빈자리를 작가가 디테일하게 채우며 추론하고 납득해가는 과정이 한 편의 소설로 완성된다는 것은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온다. 동심원을 그리듯 하는 문장의 반복이 작품을 서서히 확장시키고 거기서 오는 파동에 읽는 이의 눈은 새로이 뜨인다. “밀착하면 시야가 좁아지고 매몰되면 아예 시야가 없어진다. 내부자는 내부밖에 보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내부도 잘 보지 못한다”는 듯이.
표제작 「사랑이 한 일」에서 반복되는 문장은 「소돔의 하룻밤」과 다른 방식으로 기능한다. 「소돔의 하룻밤」이 이야기를 따라가되 작가가 자신의 속도에 맞추어 그 흐름을 밀고 나가는 방식이라면, 「사랑이 한 일」은 “그것은 사랑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라는 단 하나의 문장이 반복되며 화자인 이삭, 그러니까 “너의 아들, 네가 사랑하는 외아들 이삭을 바쳐라”라는 신의 명령과 그 명령을 따른 아버지 아브라함 양쪽을 어떻게든 이해해보고자 하는 인물의 내적 투쟁을 격정적으로 보여준다. 아버지의 손에 죽을 뻔했던 아들이 스스로 묻고 답한다. “사랑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고? 누구에 대한 사랑인가, 누구의 사랑인가. 그 사랑이 조금 덜했다면 신은 아버지에게 그런 요구를 하지 않았을 테고, 아버지 아브라함은 나를 제물로 바치겠다 순종하지 않았을 테고, 다시 신이 아버지에게 ‘멈추라’고 하지 않았을 일인가.

사랑하지 않는 무엇이나 누구를 바치는 것은 힘들지 않지만, 그래서 요구되지 않지만, 사랑하는 무엇이나 누구를 바치는 것은 힘들다. 그래서 요구된다. 우리에게 요구되는 모든 것은 힘든 것이다. 아니다. 사랑하지 않는 무엇이나 누구를 ‘바치는’ 것은 본질적으로 불가능하다. 사랑하지 않는 것을 누군가에게 주는 행위는 바치는 것이 아니라 버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바치는 모습을 취하고 있더라도 그것은 바치는 것이 아니다. 버리는 것이라고 늘 쉽지만은 않지만 바치는 것은 정말로 어렵다. 자기를 주는 상징적 표현이 바치는 것이기 때문이다. 자기를 주는 상징적 표현으로 자기가 사랑하는, 자기에게 속해 있으나 자기보다 소중한, 소중하게 여기는 무엇이나 누구를 주는 것이 바치는 것이기 때문이다. 자기에게 속해 있는 것 가운데 자기보다 소중하지 않은,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 무엇이나 누구를 주는 것은 자기를 주는 행위일 수 없다. 자기에게 속해 있으면서 자기보다 소중한, 소중하게 여기는 것은 그가 사랑하는 무엇이나 누구이다. 사랑하는 무엇이나 누구만이, 오직 사랑만이 바쳐질 수 있다. 바치기가 어려운 것은 그 때문이다. 사랑하지 않을 때는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는 일이 사랑하면 어렵게도 할 수 없게 된다.
_99~100쪽, 「사랑이 한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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