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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도서

배우 신성일, 시대를 위로하다 - 톱스타 신성일이 당신께 드리는 열정과 로망

by 글쓰남 2018. 11.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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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신성일, 시대를 위로하다 - 10점
신성일.지승호 지음/알마

반백년 영화 인생 동안 무려 506편의 영화에서 주연을 맡았던 영화배우, 무비스타, 영화인 신성일. 자신의 인생과 한국 영화사를 어떤 거짓도 꾸밈도 없는 입말로 풀어놓았다. 그저 사생활에 대해 주절대고 ‘왕년의 영광’을 회고하자는 것이 아니다. 그의 말은 지난 세기의 연대기와 풍속사를 담고 있으며, 1957년에서 21세기에 이르는 한국 영화사의 만화경을 담고 있다. 신성일은 오늘도 길 위에서 분주하다. 조명 밑은 아니지만 문화산업 발전, 영화박물관 건립을 위해 여전히 걷고 또 걷는다. 그의 걸음은 반백년의 연륜과 통찰을 오늘을 위해 쓰기 위한 노력이다.


이 책에 대하여


<스포츠동아>는 창간기념으로 한국의 유명인 100명에게 ‘역대 최고의 엔터테인먼트 스타’를 뽑아달라는 설문조사를 실시해서 2008년 3월 24일자 기사로 발표한 적이 있다. 이 설문조사에서 신성일은 놀랍게도 공동 3위인 월드스타 비(정지훈)와 한류 열풍의 주역인 ‘욘사마’ 배용준의 12표에 5표 뒤진 7표로 5위를 차지했고, 안성기, 송강호를 제쳤다. 1위는 23표를 차지한 ‘가왕’ 조용필, 2위는 18표를 차지한 ‘문화 대통령’ 서태지였다. 그 인물들은 현재도 왕성하게 활동하거나, 상당한 영향력이 있지만 신성일의 명성은 과거형이다. 그러나 1960~1970년대의 영화계를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신성일이 역대 최고의 엔터테인먼트 스타로 뽑히지 않았다는 사실에 의문을 표할지도 모른다. 영화평론가 전찬일은 “스타가 지녀야 할 최고의 덕목인 생명력에 있어 신성일은 서태지를 압도한다”고 말한다. 서태지는 1990년대를 자기 시대로 만들었지만, 현역으로 활동한 기간은 1집에서 4집을 발표하고 활동한 비교적 짧은 시간이었다. ‘가왕’ 조용필 역시 전성기를 굳이 꼽자면 1980년대를 벗어나지 못한다. 10년이 넘지 못하는 것이다.

반면 신성일은 1957년 영화사의 월급쟁이 배우(연출, 제작의 허드렛일을 모두 하는)로 시작해, 1962년 <아낌없이 주련다>, 1963년 <가정교사> <청춘교실>로 스타덤에 오르고, 1964년 <맨발의 청춘>으로 ‘신성일-엄앵란 스타 시스템’을 구축한 이래 매년 수십 편의 영화에 주연배우로 출연하게 된다. 그리고 전성기를 좀 지났다는 1970년대에도 <별들의 고향>으로 관객 36만 명을 동원하고, 1977년 <겨울여자>로 관객 49만 명을 동원했으며 2000년대까지도 영화에 출연했다. 동시에 제작 일선에서도 활동했다.

앞서 박찬욱 감독이 말한 것처럼, 한국영화사, 한국현대문화사는 반백년 동안 신성일에게 정말 오래, 많이 기대왔다. 이 책 말미에 덧붙은 신성일의 출연·감독·제작 영화 목록 자체가 그 증거다. 그 목록은 1957년에서 21세기에 걸치는 한국영화사 주요 작품 목록이며, 동시에 유현목, 신상옥, 이만희, 김기영, 김수용, 김기덕, 정창화, 이형표, 임권택 감독 들의 작품 목록과도 상당히 겹친다. 한마디로 그의 이력이 곧 한국 현대 영화사와 겹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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