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 위원회 - DcDc 외 지음/르네상스 |
제목만 읽어도 톡톡 튀는 개성이 엿보이는 이야기 여덟 편을 하나로 묶었다. 청소년 단편소설집 <첫사랑 위원회>는 이야기 하나하나가 다 날것의 생명력을 지니고 있다. 젊은 작가 여덟의 발상과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결은 각기 다르지만 펄떡펄떡 살아 숨 쉬는 생기만큼은 어느 누구도 뒤처지지 않는다. 거기다 여러 작가의 여러 단편, 그것도 청소년 대상 단편이 한 권의 책으로 묶인 것만으로도 의미가 크다.
길이가 짧다고 해서 창작의 깊이가 달라지는 건 아니다. 단편소설을 두고 괴테는 ‘하나의 이상한 사건을 다룬 것’이라고 했으며 실레겔은 ‘경이적인 모멘트나 매혹적인 모멘트를 내포하고 구속하는 형식을 갖추지 않으면 안 된다’고 했다. 그리고 하이제는 ‘행동의 통일, 시추에이션의 날카로움, 묘사의 선명성’을 단편이 지녀야 할 요소로 보았다. <첫사랑 위원회>의 단편들이 그런 특징을 잘 살리고 있는지 확인하는 것도 읽는 즐거움을 높여줄 것이다.
‘단편이라고 해도 기승전결과 때에 따라 반전이 포함되어야 하는데 짧은 분량 안에 모든 것을 풀어내야 해서 오히려 장편보다 어려울 때가 있’음에도 이 작업을 시작한 이유를 정명섭 작가는 ‘도전’이라고 표현한다. 그리고 단편은 ‘장편에서는 엄두도 못 낼 새로운 시도와 색다른 모습을 선보일 수 있는 시험무대이자 기회’라고도.
DcDc 작가의 <비인가 하교 자문 위원 선홍지의 청춘개론>은 연예인 김꽃비를 좋아하는 정
오손이 그가 출연하는 신작 영화의 시사회 및 관객과의 만남에 참석하기 위해 어떻게든 학교 밖으로 나가기 위한 시도를 다루고 있다. 당연하게도 ‘비인가’일 수밖에 없는 그 시도를 성공시키기 위해 접촉한 자문 위원 선홍지와의 만남과 이어지는 관계를 눈여겨보게 된다. 거짓말쟁이의 가장 큰 무기는 바로 진실이라고 주장하는 선홍지의 ‘진실’은 과연 무엇일지.
강지영 작가의 <각시>가 문득 반가운 것은 잊혀져가는 이야기꾼을 만나는 즐거움 때문이다. ‘옛날옛날에 어느 동네에 어떤 사람이 살았는데……’로 시작되는 할머니의 옛이야기를 다시 듣는 구수함, 그리고 으스스한 반전을 만끽할 수 있다.
김성희 작가의 <첫사랑 위원회>는 청춘의 영원한 주제, ‘사랑’의 탄생과 과정을 되짚어보게 하는 작품이다. 여자애들이 눈에 별을 박고 코 앞에 두 손을 모으게 하는 훈남의 아무도 모르는 사생활을 약점으로 잡아 학생회장이 되려고 하는 예은의 고군분투가 아슬아슬하면서도 뭉클하게 다가온다. 예은이 겨우겨우 찌질한 첫사랑을 확인하는 순간이 그러나 결코 찌질하게만 여겨지지 않는 까닭은 무엇일까.
김이환 작가의 <유니콘은 내 거>는 이제 막 마법을 배워가는 아이 선동의 마법 같은 이야기이다. 초콜릿을 먹으면 무지개 폭죽을 쏘아올리는 조그만 유니콘은 선동에게 어떤 존재인가. ‘내 것’으로 하고 싶은 그 욕구는 그저 갖고 싶은 소유욕인가, 아니면 따뜻이 보살펴주고 싶은 마음인가.
박애진 작가의 <우리 반에 늑대인간이 있다>에는 천연덕스럽게 진짜 ‘늑대인간’이 등장한다. 그것도 같은 학교 같은 교실에. 다만 누가 늑대인간인지 드러나지 않을 뿐. 그렇지 않은가, 늑대인간이라고 아무 때나 늑대로 변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인간이라고 해서 늘 인간다운 것만도 아니다. 오늘, 학교에서 일어나는 많은 문제들이 녹아있는 가운데 또한 그 많은 문제에도 불구하고 우정은 얼마만큼의 진실과 함께 싹트는 것인지 돌아보게 하는 작품이다.
전건우 작가의 <커닝 왕>은 드러내놓고 커닝을 조장하는 커닝 대회에 참가하는 고수들의 이야기다. 커닝 왕이 되기 위해 흘린 땀방울이 땅바닥에 떨어져 냇물을 이루도록 수련하는 깜찍한 학생들의 사연도 그 땀방울만큼이나 많고 다양하다. 고수들의 활약상이 밉지 않은 과장법에 스며들어 수많은 커닝 기술들이 탄생한다. ‘서장훈’, ‘밑장빼기’, ‘개구리 인술’, ‘모가지’……. 극한 수련 끝에 명예의 전당에 오른 최강자는 과연 누구일 것인가. 그리고 그 과정에서 펼쳐지는 고수들의 눈물 나는(?) 우정도 놓치지 않아야 할 묘미다.
정명섭 작가의 <조선 소년 탐정단 - 사역원 피습 사건>은 소년들의 영원한 로망, 탐정 이야기다. 단편 추리 소설이라는 색다른 매력에 조선 시대라는 배경 그리고 역사 속 인물 장영실과 낯선 회회인(아랍 회교도)까지 주인공으로 등장하여 읽는 즐거움을 더하는 작품이다.
주원규 작가의 <역사는 그 방 옆에서 자란다>는 평범한 공고생이 일으킨 황당한 혁명을 거쳐 황당하게 탈바꿈한 대한민국의 모습을 그린다. 그 세계에서도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간극이 씁쓸하게 존재하는 현실이 펼쳐진다. 작가가 이긴 자들의 역사가 아닌 함께하는 자들의 역사에 관심 한 번 가져줬음 좋겠다는 바람을 담아 쓴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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