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숭이 전쟁 - 리처드 커티 지음, 유수아 옮김/내인생의책 |
독재를 고발하고, 독재를 물리치며, 새로운 시대를 열어간다는 이 소설은 아이러니하게도 독재자들에게 큰 희망을 주는 소설이다. 책은 부당하게 권력을 얻은 권력이 부패해가며 점점 독재로 치닫는 모습을 우리 앞에 보여준다. 그리고 독재자들의 전범적인 형태, 그러니까 어떻게 권력을 장악해나가며 그 과정에서 언론 통제와 억압, 교육 제도를 어떻게 운용하는지를 구체적으로 폭로한다. 마지막으로 누구나 예상하듯, 권력이 무너지고 마침내 민주주의 사회를 맞는 희망에 찬 모습까지 눈앞에 제시해놓는다. 하지만 이 책은 그러면서 권력은 무너진 뒤가 문제임을, 말 그대로 권력의 독은 권력이 무너져도 사라지지 않는다는 점을 충격적으로 제시해놓는다.
소설은 우리나라의 현대사를 요약해놓은 듯 상세하면서도 흥미롭다. 자학의 역사관을 버리고 새로운 역사를 가르쳐야 한다는 독재자의 주장이나, 민중은 어차피 곧 잊어버린다며 더 가멸찬 여론 조작을 지시하는 장면에서는 불과 얼마 전 우리나라의 사건이 머릿속을 스쳐간다. 그러다 부정한 권력이 정의를 부르짖고, 악행이 선행으로 포장될 때, 비선실세의 모임이 반칙으로 얻은 특권을 대의로 포장할 때, 그 뒤 부패할 대로 부패한 권력이 사이비 종교의 색채를 띠며 이야기가 절정으로 치달아갈 쯤, 독자는 책 첫머리의 작가의 말에 숨은 냉소에 숨을 헉, 하며 내쉬게 될 것이다. “이 책은 허구이며 책 속 어떤 내용도 현실에 기반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무너진 권력이 민의라는 이름으로 남아 미래를 위협하는 장면은 오늘날 우리의 현실을 새삼 돌아보게 만든다. 권력자 하나만 바뀌었을 뿐 아무것도 바뀌지 못한 우리나라의 현실을.
책은 인도 대도시와 그 주변에서 살아가는 원숭이 종족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겪었고, 앞으로도 겪을지 모르는 사회와 정치, 개인의 양심 문제를 흥미롭게 풀어놓고 있다. 그러나 막연하게 굵직한 사건만 제시하며, 큰 줄거리를 술수 풀어나가는 멍청한 짓을 작가는 결코 하지 않는다. 책에 나오는 원숭이 하나하나마다 사연이 있고, 이들의 행동에는 각자 납득할 만한 이유가 있다. 그리고 이들 모두가 모여 원숭이들의 세계사라는 거대한 줄기를 빈틈없이 자아 내놓는다. 이 소설에 쏟아진 수많은 추천사에 따르면 “도무지 흠 잡을 데가 없다”는 이 소설, 거대한 담론과 작은 이야기들이 모인 이 기념비적이며 독창적인 소설은 우리가 읽을 때마다 늘 새로워질 준비가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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