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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도서

우리의 병은 오래전에 시작되었다

by 글쓰남 2016. 11.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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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병은 오래전에 시작되었다 - 10점
알랭 바디우 지음, 이승재 옮김/자음과모음
테러의 시대다. 폭력이라고 이름 붙여진 하루하루의 연속을 살아가는 우리는, 이 시대의 근간이 되어버린 무차별적 폭력의 한가운데에서 그 과잉된 폭력의 희생양이라는 주체성을 다시금 부여받는다. ‘우리가 살아남은 것은 어디까지나 운이 좋았을 뿐’이라는 누군가의 말, 그리고 그 말을 일종의 추체험으로 받아들여야만 하는 우리에게, 이제 ‘테러’라는 말은 그 섬뜩한 이미지의 질감 외에는 아무것도 전해줄 수 없는 기표가 되었다. 문제는 이 헐거운 기표를 벗어던지고 ‘다시’ 주체의 문제로 돌아가야만 하는 오늘날의 정세이며, 이 주체(성)의 파국 속에 기생하는 국가-정치의 면면을 들춰내야 한다는 지극히 당연한 사실이다. 그동안 자국인 프랑스는 물론 세계적 정세에 개입하는 것을 자신의 사상적 특이점(singularity)으로 삼아 온 알랭 바디우는, ‘테러 이후’를 쉽게 재단하지 않기 위해 즉각적인 목소리를 낸다. 파리 테러가 일어난 지 불과 열흘 만의 강연을 통해서였다.

이처럼 바디우의 강연은 2015년 11월 13일에 대한 언급으로부터 시작한다. 다만 바디우는 라캉이 말한 ‘증상의 상징화’라는 전략을 경유해 테러를 ‘참극’, ‘범죄’, ‘살해’, ‘대량학살’ 등으로 에둘러/새롭게 명명하면서, 테러라는 텅 빈 기표와 거리를 둔다. 그는 서두에서 분명한 어조로 “이 대량학살극을 현대 세계, 즉 세계 전체가 앓고 있는 중병의 여러 가지 현재진행형 증상의 하나”로 다룰 것을 주지하고 있다. 바디우에 의하면 이러한 증상은 “전례 없이 폭력적이고 대규모가 될 게 명약관화한” 것이다. 더욱이 불가해한 폭력을 바라보는 우리에게 있어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복수(復?)의 관념, 즉 바디우가 언급한 것처럼 “정의를 복수로 변질시키는” 현재의 증상은 (아이스킬로스의 비극 『오레스테이아』의 근본 주제인) “이제 우리가 살인한 사람들을 죽일 차례”라는 욕망만을 증식시킨다. 결국 복수의 관념이 해결해주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오히려 복수의 주체는 테러의 주체와 대칭 관계를 형성할 뿐이다.



그러므로 바디우는 하나의 원칙에서 출발한다. “인간이 행한 것 중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없다.” 이 원칙으로부터 그는 ‘사유 불가능한 것을 사유하기’ 위해 일곱 가지의 논점을 돌파하자고 제안한다. 첫째, 현대 세계의 객관적 구조를 통해 바라본 프랑스 사회의 현주소, 둘째, 이러한 현대 세계의 구조가 사람들, 사람들이 지닌 다양성, 사람들 간의 관계, 그리고 이들의 주체성에 끼친 영향, 셋째, 앞에서 다룬 주체성(들)에 대한 논의와 이들 주체성의 구분, 넷째, 파리 테러를 일으킨 현대판 파시즘의 인물들, 다섯째, 각기 다른 요인을 통해 따져본 파리 연쇄 테러, 여섯째, ‘프랑스’와 ‘전쟁’이라는 두 개의 단어를 중심으로 한 국가의 반응과 여론몰이, 일곱째, 앞서의 논점을 다루면서 규명될, 여론몰이의 영향권과 국가의 반동적 방향에서 벗어난 ‘정치의 회귀’라는 관점이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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