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올해의 가장 명랑한 페미니즘 이야기 - 케이틀린 모란 지음, 고유라 옮김/돋을새김 |
영국을 시끌벅적, 들썩이게 만드는 칼럼니스트
케이틀린 모란은 영국 울버햄튼의 비좁은 공공임대주택에서 7명의 동생들과 소파 쟁탈전을 치르며 자랐다. 16세부터 사회생활을 시작하여, 18세가 되자마자 ‘합법적 대출’을 받아 독립을 선언했으며, <네이키드 시티>라는 음악방송을 진행했다. 1992년부터 지금까지 영국의 《타임스》에 유명 인사들을 풍자하는 칼럼을 연재하는데, 칼럼이 실릴 때마다 영국 전역이 들썩거릴 정도로 이슈를 불러일으키며 뜨거운 인기를 누리고 있다. 파격적인 공연으로 화제를 몰고 다니는 미국의 여가수 레이디 가가와 난장 파티를 벌이기도 하고, 베네딕트 컴버비치의 집을 직접 찾아가 그의 부모를 만나서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날 것 같은 셜록의 인간적인 모습을 소개하는 등 영국에서 가장 주목받는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실비아 플라스, 재니스 조플린을 숭배하며 자란 소녀?
스스로를 ‘비를 맞으며 울버햄튼의 뒷골목을 어슬렁거리는, 허리까지 머리를 기른 우울한 얼굴의 뚱뚱한 히피 소녀’였다고 소개하는 그녀의 우상은 20세기 후반 가장 중요한 여성주의자인 저메인 그리어였다.
그녀는 남자들 사이에서 꿋꿋하게 자신의 정체성을 고수한 여성들이 불행하거나 일찍 죽게 된 요인들은, 오직 잘못된 시대에 태어났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우리는 예의지국에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영국에는 외국인 노동자들을 비하하는 끔찍한 단어들이나, 내가 열다섯 살 때 한 건설노동자가 나를 ‘젖퉁이’라고 불렀던 일들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본문 124쪽)
그녀는 ‘자신의 몸과 마음은 내 스스로 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원칙을 세우고 과거의 여성주의자들의 행적을 찾고, 수많은 책들을 읽으면서 열다섯 살에 스스로 ‘나는 여성주의자다’라고 선언한다.
이 책은 그녀가 자발적 또는 도발적으로 여성주의자가 되기까지 겪어온 매우 사소한, 많은 경우에는 별것도 아닌 듯한 사례들을 통해 진정한 여성주의에 관한 깊은 이야기를 털어놓고 있다. 여성의 결혼, 사랑, 취업 등 일반적인 범주의 내용뿐만 아니라 하이힐, 속옷, 제모, 포르노, 낙태, 성희롱, 성형수술, 스트립클럽 등과 같은 여자들을 둘러싼 그 모든 것들에 대해 절대 입 밖으로 꺼내서는 안 될 것만 같은 이야기들이 소개된다. 이 책을 집어들면 ‘허걱’할 사람들이 꽤 많을 수도 있다. 금기 아닌 금기를 직설적으로, 진지하게, 그러면서도 배꼽 잡는 유머와 절묘한 비유를 가득 담아 통렬하게 까발리며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자신의 경험을 솔직하게 털어놓기 때문이다. 하지만 곧 무릎을 탁 치며‘아하’ 하는 공감의 감탄사를 내뱉게 된다.
그러나 그 이야기들의 핵심에는 여성들이 가부장제에 얼마나 오랫동안 짓눌려 왔는지, 그리고 여성주의 운동이 얼마나 왜곡되어 왔는지를 보여주는 것들이다. 즉 ‘연애 유형 찾기에 몰두하고, 어떤 립스틱을 바를지, 남자를 섹시하게 유혹할지를 궁리하며 시간을 보내거나, 제대로 된 여성인 척하는 것’이 과연 진짜 여자로 살아가는 것인지를 되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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