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루돌프 - 김성라 지음/사계절 |
눈을 감고 있는 여름은 잠을 자는 것이 아니구나
땀을 뻘뻘 흘리다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가만히,
그 바람을 맡고 있는 거야
『고사리 가방』 『귤 사람』을 잇는
제주의 바닷가마을 이야기, 『여름의 루돌프』 출간
김성라 작가의 세 번째 제주 이야기, 『여름의 루돌프』가 출간되었다. 고사리 소풍, 봄의 숲, 차갑고 달콤한 귤에 이어 이번엔 여름을 맞은 바닷가마을 이야기가 펼쳐진다. 덥고 습하다가도 한 줄기 바람에 두 뺨이 시원해지는 여름, 섬마을에서 평생을 해녀로 살아온 할머니들과 도시의 더위를 피해 할머니의 북쪽 방으로 피서를 간 ‘나’의 이야기다.
짙푸른 초록에 멈춘 여름, 여름을 움직이는 사람들
적어도 삼 개월은 짙은 초록에서 멈추어 있을 것만 같은 여름. 더워서 꼼짝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려도 삼 개월은 길다. 이 짙은 계절에 ‘내’가 찾은 곳은 바닷가마을, 주황색 지붕이 예쁜 할머니의 시골집. 이곳엔 육십 년 해녀로 살아온 할머니가 있고 할머니의 정 많은 친구들이 있고 하늬바람이 불어오는 북쪽 방이 있다.
초여름, 아직은 인적이 드문 바닷가에 나가 햇볕에 데워진 모래 밟고 바닷물에 발 담그고 있다 보면, 주황색 테왁에 제철 성게 가득한 망사리 이고 활짝 웃는 할머니가 온다. 네 시간 물질을 마치고도 세 시간은 성게를 까야 집에 돌아갈 수 있겠지만 6월 성게 대목은 모두가 기다리는 반가운 한철이다. 탱글탱글 달큰한 성게 넣고 썩썩 비벼 먹는 성게 비빔밥은 노곤한 저녁을 채우는 진한 여름 바다 맛.
바다가 무섭지 않느냐는 질문에 “무서울 것도 엇걸랑 말주기”, 무서울 게 무어냐는 할머니의 호기로운 대답에는 멜 떼와 숨비소리, 소라, 성게, 우미, 오분자기가 눈에 선해 그만 마음이 출렁출렁해져서 그만두려야 그만둘 수 없다는 귀엽고 비장한 고백이 숨어 있다.
누구 보는 이 없지만 곱게 화장하고 테왁에 망사리에 호맹이 챙겨 들고 달달달 스쿠터에 올라 할머니는 출근하고, ‘나’는 느지막이 일어나 작년에 물질을 그만둔 순옥 할머니 식당에 들러 따끈한 깅이죽을 먹는다. 물질을 해도, 물질을 그만두어도 사철 내내 일을 놓는 법은 없다. 순한 바람 불면 물질하고 사나운 바람 불면 잠시 쉬어 간다.
무더운 여름 속, 기분 좋은 여름휴가처럼
사나운 바람 덕분에 쉬어 가게 된 날, ‘나’는 할머니들에게 스쿠터 타는 법을 배우고 여름 바닷가를 달린다. 헤어짐에 코끝이 빨개질 만큼 정든 할머니들의 배웅은 마치 여름의 루돌프처럼 찡하고 고맙다. 선뜻 정을 내어 주는 어른들, 그들의 정다운 사투리와 일터인 바닷가마을이 여름휴가처럼 기분 좋게 다가온다.
김성라 작가는 특유의 아늑하고 가벼운 색감과 풍부한 컷 구성으로 바닷가마을의 여름 일상을 구체적으로 담아냈다. 낯설면서도 한편 재미있는 제주 토박이 사투리, 실제 지역을 짐작해볼 수 있는 바닷가의 작은 동네, 길의 풍경, 금세 변하는 날씨와 생업의 모습들이 진한 생활감을 더한다.
더운 여름, 휴가지에서 만나고 싶은 곳은 이런 바닷가마을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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