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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도서

소년아, 나를 꺼내 줘 - 제15회 사계절문학상 대상 수상작

by 글쓰남 2017. 9.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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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아, 나를 꺼내 줘 - 10점
김진나 지음/사계절

그 여름, 사랑할 수 있는 존재가 된 소녀를 만나다

어떤 이들에게 여름은 힘겨운 계절이다. 숨 막히는 밤과 피할 데 없는 낮이 끝나지 않을 것만 같다. 계절이 순환하며 여름도 언젠가 지나가리라는 사실을 잘 안다고 해서, 그 열기가 견딜 만해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모두가 겪는 일’의 무게가 상대적이라는 사실에 무심하다. 그 ‘여름’이 ‘사랑’이라면 어떨까. ‘삶’이라면, 혹은 ‘청소년기’라면?

『소년아, 나를 꺼내 줘』는 열여덟 살 여름, 주인공 ‘신시지’가 겪은 사랑 이야기다. 시지는 소년 ‘얼’과 만난 단 세 시간을 61일 동안 되풀이하며, 자신의 모든 시간과 온 마음을 얼을 생각하고 얼을 기다리는 데 쏟는다. 그러나 『소년아, 나를 꺼내 줘』는 짝사랑과 소녀, 청소년기에서 흔히 연상되는 모든 ‘무심한 일반화’를 부드럽지만 단호하게 거부한다.

『소년아, 나를 꺼내 줘』는 이 짝사랑을 시작할 기회도 끝낼 기회도 ‘소년’에게 주지 않는다. 시지는 누구도 아닌 자신의 힘으로 대답 없는 사랑과 ‘열여덟’이라는 설명하기 어려운 시기를 빠져 나온다. 왕자가 나타나 잠든 소녀를 깨우고, 기승전결이 분명한 사랑 이야기에 익숙한 독자들은 『소년아, 나를 꺼내 줘』에서 가장 주체적이고 충만한 짝사랑 서사와 그 이야기의 눈부신 주인공을 만나게 될 것이다.



◎ 짝사랑이라는, 고요하게 들끓는 내면에 대한 우아하고 투명한 응시

시지는 엄마를 따라간 자리에서 ‘얼’을 만났다. 어릴 적 몇 번 만났을 뿐인 시지와 얼은 나란히 걷고, 대화를 나눈다. 이제 다 자란 남자의 얼굴을 한, 낯설고도 친숙한 얼과 마주한 세 시간. 편안한 분위기임에도 시지는 평소 하지 않던 실수를 하고, 당황하는 와중에도 얼의 웃음이 눈부시다.


“알 속에서 2개월쯤 지나면 새끼 거북이는 알을 깨고 나와야 해. 그때 알을 깨기 위해 ’카벙클‘이라고 불리는 임시 치아가 생겨. 새끼 거북이는 카벙클이 온통 부서지고 입에서 피가 나도록 알의 내벽을 깨.”

나는 ‘카벙클’을 발음하는 얼을 자세히 바라보았다. 그 발음이 신비롭게 들렸다. 그때 주변의 것들과 상관없이 갑자기 나를 툭 건드린 건 뭐였을까. 소리도 없고 격렬한 동작도 없었다. 묘하게 달라졌다. 나는 조금 더 바짝 당겨 앉았다. (15-16쪽)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시지 마음속에 있던 커다란 문이 ‘아무도 힘주어 밀지 않았는데 저절로 열려 버렸다.’(16쪽) 얼을 만난 다음 날부터 각 장의 제목은 1일, 2일 시간순으로 적힌다. 스스로 멈춰 있던 시지의 시간이 흐르기 시작한 것이다. 

『소년아, 나를 꺼내 줘』는 사랑이 시작된 미묘한 순간에서부터 시지의 마음이 한없이 가라앉기도 격렬하게 내달리기도 하는 61일 밤과 낮의 기록이다. ‘너를 만나고 나는 더 커진 것 같아’, ‘사랑을 하면 발꿈치가 투명해진대’처럼 상투적이기 쉬운 사랑 고백마저 감각적이고, 작품 곳곳에 배치된 꿈과 현실을 오가는 동화 같은 장면들은 상상만으로 독자들을 어디까지 데려갈 수 있는가를 보여 준다. 『소년아, 나를 꺼내 줘』는 로맨스 소설에 나올 법한 과장된 대사나 무리한 설정 없이, 섬세한 문체와 문학적 장치만으로도 독자들을 짝사랑에 빠진 소녀에 몰입하게 하는 새롭고 감각적인 사랑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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