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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도서

대학은 누구의 것인가 - 빼앗긴 자들을 위한 탈환의 정치학

by 글쓰남 2017. 9.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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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은 누구의 것인가 - 10점
채효정 지음/교육공동체벗

명품이 되고 싶은 대학 


오늘날 대학은 거대한 상징과 기호의 제국이 되었다. 교육 내용과 무관하게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교육 상품을 개발하고 소비자들의 허영과 불안에 기대 그것을 판매한다. ‘미래’, ‘창조’, ‘융·복합’, ‘혁신’ 등 실제를 그럴듯한 기호들로 포장하는 대학의 마케팅 방식은 명품 마케팅과 다르지 않다. 인문주의 대학으로 시민 사회의 호평을 받았던 후마니타스칼리지 역시 경희대 구성원들을 으쓱하게 만드는 하나의 브랜드에 지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정치적 주체에게는 허공에 떠 있는 가치를 땅 위로 끌어내려서 실제 이루고자 했던 가치를 만들어 나갈 수 있는 힘이 있다. 문제는 그런 ‘후마니타스’라는 이념에 걸맞는 교육을 만들어 나갈 주체들이 어느 순간 대학에서 사라졌다는 것이다. 



대학은 공화국이다 


저자에 따르면 대학은 본래 하나의 공화국(res pu?bli?ca)이다. 공화국의 주권은 그 나라의 자산(common wealth)을 만드는 모든 이에게 있다. 즉 대학을 대학으로 존재하게 만드는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이 대학의 주인이다. 그들은 배우는 사람들과 가르치는 사람들, 그리고 대학이 존립하기 위해 필요한 노동을 감당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명품이 되고 싶어 하는 이 대학에는, 대학의 입장을 충실히 대변하는 마름이 되어 돈 되는 프로젝트를 따 오는 데 여념이 없는 ‘업자’로서의 교수와, 허울뿐인 교육 상품을 구매하면서 만족감을 느끼는 소비자로서의 학생만 남았다. 그나마 대학과 한 몸이 되지 않은 노동자들은 어느 날 해고당해도 누구에게 책임을 물어야 하는지조차 알 수 없는 초단기 임시직으로 위태롭게 살아가고 있다. 대학은, 많은 사람이 북적이고 있는 것 같지만 아무도 뿌리내리지 못한 ‘유민들의 도시’가 된 것이다. 

그렇게 무주공산이 된 대학에서, 대학이라는 공공재를 자신의 사적 재원으로 전취하기 위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자들이 있다. 자본과 정부, 대학 관료들이 그들이다. 자본은 기술과 지식의 생산 기지인 대학에 그 어느 때보다 눈독을 들이고 있고, 자본과 한편인 정부는 막대한 규모의 정부 지원금을 미끼로 기업이 원하는 방향으로의 구조 조정을 사실상 대학에 강제하고 있다. 그리고 대학의 행정 관료들은 교육부가 내건 지원금을 따기 위해 앞장서서 대학 구조 조정을 추진하고 있다. 국가와 자본, 대학의 행정 관료들이 대학이라는 공유지에 들어와 주인 행세를 하며 대학을 도둑질하고 있는 꼴이다.



빼앗긴 자를 위한 탈환의 정치학 


저자는 기술과 지식의 독점과 사유화를 막고 그 혜택이 기업이 아닌 더 많은 사람들에게 공평하게 돌아가도록 대학을 모두의 것으로 탈환해야 하며, 대학의 공공성과 민주화를 위한 투쟁은, 정치 사회적으로 소수의 전문가 지배 체제로 갈 것이냐 민주 정치를 강화할 것이냐라는 문제를 놓고 겨루는 매우 중대한 전선이라고 강조한다. 그리고 대학을 되찾기 위한 방법을 정치에서 찾는다. 정치를 통해 대학을 민주 공화국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말이다. 

그러려면 교수와 학생, 노동자들이 자기 목소리를 찾고 먼저 스스로 주인이 되어야 한다. 주인은 주어진 선택지들을 거부하고 주체가 되어 스스로 입법의 권리를 행사하는 자이다. 혼자서는 정치적 주체가 될 수 없다. 낱낱의 소비자로, 업자로 해체되어 있지 말고 점성이 있는 덩어리로 뭉쳐 하나의 세력이 되어야 한다. 그렇게 동그랗게 모여서 우리 공동체에 좋은 것이 무엇인지 함께 결정하고 행동할 때 대학에 정치가 다시 회복될 수 있다. 대학에서 정치를 회복함으로써 몫이 없는 자, 목소리 없는 자들이 자기의 몫과 목소리를 찾는 과정, 그것이야말로 대학이 한때 가졌던 정치와 민주주의 부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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