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사내가 내 목을 잘라 보자기에 담아 간다 낡은 보자기 곳곳에 구멍이 나 있다//나는 구멍으로 먼 마을의 불빛을 내려다보았다//어느날 연인들이 마을에 떨어진 보자기를 주워 구멍으로 검은 사내를 올려다보았다//꼭 한발씩 내 머리를 나눠 딛고서(「밤」 전문)
2000년 <작가세계> 신인상으로 등단한 이후 감각적 사유와 탁월한 언어 감각으로 서정시의 새로운 면모를 보여주며 끊임없는 자기갱신을 지속해온 신용목 시인의 네번째 시집 <누군가가 누군가를 부르면 내가 돌아보았다>가 출간되었다. “서정시의 혁신”(박상수)이라는 호평을 받았던 <아무 날의 도시>(문학과지성사 2012) 이후 5년 만에 펴내는 이 시집에서 시인은 당대 사회 현실을 자신의 삶 속에 끌어들여 존재와 시대에 대한 사유의 폭과 감각의 깊이가 더욱 확장된 시세계를 선보인다. 삶에 드리워진 슬픔과 상처를 연민에 찬 시선으로 들여다보는 섬세한 비유와 세련된 이미지, 탄탄한 시적 구성이 돋보이는 견고한 시편들로 짜인 “아름답고 참혹한 시집”(허수경, 추천사)이다. 2017년 현대시작품상 수상작 「공동체」(외 9편)를 포함하여 모두 70편의 시를 부 가름 없이 실었다.
울음 속에서 자신을 건져내기 위하여 슬픔은 눈물을 흘려보낸다/이렇게 깊다/내가 저지른 바다는//창밖으로 손바닥을 편다//후회한다는 뜻은 아니다/비가 와서//물그림자 위로 희미하게 묻어오는 빛들을 마른 수건으로 가만히 돌려 닦으면//몸의 바닥을 바글바글 기어온 빨간 벌레들이 눈꺼풀 속에서 눈을 파먹고 있다//슬픔은 풍경의 전부를 사용한다(「저지르는 비」 전문)
시인은 삶의 고통 속에서 주로 낮고 그늘진 곳을 응시하는 눈으로 어두운 세상을 바라본다. 시인은 “기쁘다고 말하며 울고 슬프다고 말하며 웃는 사람들”(「착하고 좋은 사람들」)이 언제나 “가장 소중한 것을 착취당하”며 살아가는 세상에서는 “어떤 비도 슬픔을 씻기진 못하”(「후라시」)고 “슬픔과 몸이 하나일 수 있다는 것”(「가을과 슬픔과 새」)을 깨닫는다. 이 어두운 시대를 어떻게 살아갈 것이냐는 고뇌 속에서 시인은 전망이라곤 당최 보이지 않는 ‘아무 날의 도시’에서 살아가는 존재들의 “사랑과 슬픔과 분노”(「노랑에서 빨강」)를 곡진한 언어로 기록하며 삶의 진실에 다가가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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