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득권층 - 오언 존스 지음, 조은혜 옮김/북인더갭 |
기득권층이 도대체 무어냐?
금수저가 흔하게 거론되는 요즘 누구나 기득권층을 이야기한다. 이른바 최순실 사태에서 비롯된 탄핵정국에서도 ‘기득권’이라는 말은 가장 흔하게 정치인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그러나 도대체 기득권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대답이 잘 떠오르지 않는다. 문제는 우리가 기득권의 실체에 대해 무지할수록 기득권층에겐 이득이라는 점이다. 저자는 기득권층을 다음과 같이 정의내린다. 그들은 한마디로 권력을 가진 소수집단이다. 다시 말해 다수에 맞서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려는 자들, 즉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소수 권력집단이 바로 기득권층이다.
이 소수 기득권층의 뿌리에는 지난 30년간 다수의 권력을 체계적으로 최상층에 재분배하는 데 앞장서온 우익 이론가들이 있었다. 저자가 선동자들(The Outriders)라고 부르는 이들은 70년대 초만 해도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소수 이론가들이었다. 하이에크(F. Hayek)로 대변되는 이들 자유방임주의 이론가들은 ‘부자감세’ ‘규제철폐’ ‘민영화’ 등을 외치며 전후에 합의된 사회민주주의 체제를 부정하다 대처리즘-레이거노믹스를 거치며 확고한 이데올로그로 자리잡았다. 초기 선동자들의 영향으로 태어난 애덤스미스연구소나 헤리티지재단 같은 자유주의 싱크탱크들은 보수파 사업가들에게 자금지원을 받으며 자유시장 이념을 전파했으며 국가와 공공지출의 의미를 악마화하는 데 앞장서왔다. 가령 영국의 납세자동맹 같은 단체는 납세자 권익을 옹호한다는 탈을 썼으나 실은 복지기금이나 노조전임자를 공격함으로써 기득권층의 이익을 대변한다. 이는 마치 우리의 전경련이나 어버이연합 같은 단체가 그 이름과는 상관없는 기득권 옹호 단체인 것과 비슷하다. 그러나 선동자들은 그저 사업가를 옹호하는 냉소적인 돌팔이가 아니다. 선동자들은 흔들림없는 자유주의 신념을 가지고 일하며, 바로 이 신념이 사업가들을 사로잡아 돈을 내도록 이끈다. 이처럼 현재 정치적으로 수용 가능한 논의들, 즉 ‘오버턴의 창’을 옮김으로써 선동자들은 원래는 불합리하다고 여겨진 민영화라든가 부자감세 같은 의제들을 건전한 상식이자 확고한 현실로 만들어냈다. (1장)
그러나 기득권층이 이처럼 신주단지 모시듯 떠받드는 ‘자유시장’은 환상에 근거하고 있음이 점점 드러나고 있다. 기득권층은 작은 정부, 적은 세금을 외쳐대지만 사실 이들의 기업은 엄청난 국가 부조(扶助)를 기반으로 운영된다. 가령, 구글의 검색엔진이나 GPS서비스조차 국가의 연구개발에 의지하며 도로, 항만, 철도 같은 기반시설 없이 기업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또한 기업에 필요한 노동자들은 국가의 교육으로 키워지며 세액공제, 주택보조금 같은 복지제도는 기업의 임금을 보전해준다. 무엇보다 스스로의 탐욕 때문에 무너진 기업에 제공된 엄청난 구제금융을 보라. 이는 부자와 기업이 필요할 때 국가가 언제든지 나서서 그들을 구제해주고 있음을 말해준다. 그럼에도 선동자들을 비롯한 자유방임주의자들은 부자 기업이 아니라, 최하층을 세금 낭비의 주범으로 몰고가기 일쑤다. 켄 로치의 영화 『나, 나니엘 블레이크』에서 묘사되듯이, 자신들에게 돌아가야 마땅할 분노를 푸드뱅크에서 먹을 것을 구해야 하는 이들에게 돌리는 기득권층의 작태는 끊이지 않고 이어진다. (5장, 7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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