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신드롬 - 칼 세데르스트룀.앙드레 스파이서 지음, 조응주 옮김/민들레 |
‘뭐든 다 하는’ 현재형 인간
“출근 전 스마트워치를 차고 자신의 심박수를 확인하며 조깅을 한다(물론 퇴근 후로 바꿔도 무방하고, 조깅을 필라테스나 웨이트트레이닝으로 바꿔도 무방하다). 조깅하면서 오후에 있을 회의 내용에 관한 통화를 할 수도 있고, 잠깐의 메일 확인도 가능하다. 물론 뛰면서. 출근해선 언제나 그렇듯 업무에 몰두하고 점심시간엔 잘 짜여진 건강식을 먹(으려고 애쓰)고, 식후엔 몸에 좋다는 약 몇 알을 열심히 챙겨먹는다. 퇴근 후에 취미활동을 할 수 있다면 그나마 다행, 아니면 그냥 야근을 한다. 그리고 이 모든 일상을 앱이나 SNS에 기록하고 전시한다. 완벽한 하루, 나쁘지 않은 건강한 삶으로 보여지는가? 당신은 이 ‘라이프 스타일’에서 자유로운가?”
<건강 신드롬>은 이미 북미·유럽 사회에선 일반화되어 있는 ‘웰니스’라는 현상이 어떻게 하나의 이데올로기가 되어 사람들이 자신을 ‘상품성 높은’ 존재로 만들어 가도록 부추기는지에 대해 다양한 관점에서 분석한 책이다.
광범위한 사례 연구를 통해 현대 자본주의에 기여하는 웰니스 강박증을 진단한 이 책은 오늘날 웰니스 이데올로기가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신랄하고 재치 있게 분석함으로써 건강에 대한 집착 자체가 병적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도덕적 의무로서의 ‘잘 살기’
웰니스(wellness)는 웰빙(well-being)과 행복(happiness)·건강(fitness)의 합성어로 신체와 정신은 물론 ‘사회적으로’ 건강한 상태를 의미한다. 하나의 라이프 스타일로 자리 잡은 웰니스가 이데올로기, 즉 일련의 생각과 신념으로 포장됨에 따라, 사람들은 웰니스를 추구할 가치가 있는 매혹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게 되고, 오늘날 현대인을 사로잡는 도덕적 요구가 되었다.
두 저자는 오늘날 ‘웰니스’는 선택이 아니라 도덕적 의무라고 말한다. 살면서 매순간 고려해야 할 사항이라는 것이다. 수많은 광고와 라이프 스타일 잡지들이 부르짖는 가치이기도 하지만, 은연중에 전파되는 경우도 많아 사람들은 이 명령이 외부에서 오는 건지 자신의 내면에서 비롯되는 건지도 헷갈린다. 저자는 이러한 웰니스 명령이 사람들의 삶을 어떻게 왜곡하는지를 분석한다. 이것이 바로 이 책의 원제이기도 한 ‘웰니스 신드롬(The Wellness Syndrome)’이다. 한국에선 다소 낯선 개념인 ‘웰니스’의 핵심에는 ‘건강’이 자리하고 있어 번역서 제목은 <건강 신드롬>으로 잡았다.
이를 테면 건강이 이데올로기가 되면, 그 틀에 자신을 끼워 맞추지 못한 자들은 낙인이 찍힌다. 흡연자가 그렇고, 뚱뚱한 자가 그러하다. 자신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사람, 나태한 사람이라는 딱지가 붙는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은 단순히 자신의 건강을 해치는 것을 넘어 사회 전체를 위협하는 자로 간주된다. 오늘날 대부분의 기업과 관공서에서는 흡연을 금지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흡연자’를 금지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
일과 일상의 경계가 허물어진, ‘생산하는 존재’로 살기
오늘날 우리의 모든 행동은 생산적인(생산에 도움이 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으로 나누는 신자유주의적 가치관에 잠식되어 있다. 웰니스가 ‘기분 좋은 상태’를 뜻하는 일반적 개념에서 ‘진실하고 정의로운 삶’을 위해 반드시 추구해야 할 대상이 되는 순간, 웰니스는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된다. 생활방식을 통째로 재설정해야 하는 실현 불가능한 미션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웰니스 명령은 식생활과 수면을 포함해 하루 스물네 시간을 생산성을 제고할 기회로 삼도록 우리를 몰아간다.
신자유주의적 행위자에게 몸은 더 이상 사적인 것이 아니다. 심지어 정치적인 것도 아니다. 몸은 세심한 모니터링과 최적화 과정을 거쳐야 이윤을 극대화할 수 있는 하나의 사업체인 것이다. 여기서 더 생산적인 인간이 되고 나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는 여전히 대답 없는 질문으로 남는다. 생산성이 높아진 덕에 절약된 시간을 어떻게 써야 할까? 아마 ‘생산성을 더 높일 방법을 찾는 데 쓰라’ 할 것이라고 저자는 답한다.
성찰하는 삶도 깡통일 수 있다
이렇게 웰니스를 통해 생산성을 높이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은 또 다른 문제를 낳는다고 저자는 경고한다. 우리를 자기중심적으로, 내면만 지향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자나 깨나 오로지 자기 몸에만 관심을 두게 만드는 것이다. 우리가 다이어트 규칙을 어기거나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을 때 느끼는 죄책감도 바로 이 웰니스 명령 때문이다.
웰니스를 극대화하기 위해 노력하면 할수록 우리는 더 소외되고 더 막막해진다. 완벽한 다이어트 방법을 찾고, 행복을 강박적으로 추구하고, 의무감 속에서 운동을 하고, 끝이 안 보이는 라이프 컨설팅을 받고, 생리 현상이나 심박수를 앱에 세밀히 기록하고, 하루 전체를 마치 게임처럼 살아간다. 이 퀘스트에서 저 퀘스트로 레벨업 하듯, 인생도 레벨업을 해야 하는 게임으로 여기는 것이다.
이러한 웰니스의 함정에 빠지지 않는 길은 무엇일까. 저자는 우리가 인간으로서 가능성으로만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무력함’으로도 규정된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는 어떤 면으로든 늘 부족함이 있기 마련이며, 인생에서 중요한 것들 대부분은 실패와 고통이 따르기 때문에 그만큼 가치가 있는 것이다. 아름다움은 슬픔에 젖어 있을 때가 허다하고, 진실은 종종 우리를 괴롭게 만든다. 사랑은 늘 우리 가슴을 찢어놓는다. 이렇듯 인생의 중요한 가치들은 고통을 수반하지만, 그 가치를 포기하고 싶을 만큼 큰 고통은 아니다.”
“우리의 몸을 잠시 잊고, 행복 좇기를 멈추고, 우리의 인격이 건강하고 행복해질 잠재력으로만 규정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인다면 어떨까?” 누군가 말했듯 “성찰하는 삶도 깡통일 수 있다.” 자신의 건강에만 매달리기보다 세상의 병을 직시하고 세상을 보다 건강하게 만드는 데 힘을 보태는 것이 진실로 건강한 삶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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