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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도서

훈의 시대 - 일, 사람, 언어의 기록

by 글쓰남 2018. 12.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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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 <대리사회> 작가의 신작
학교, 회사, 아파트에서 욕망을 마주하다 

“나는 계속 거리의 언어를 몸에 새겨나가려고 한다. 
《대리사회》는 내가 써나갈 글의 서론과도 같다. 
제도권과 거리의 경계에서, 
언제까지나 경계인으로만 존재하며 그 균열을 탐색하고 싶다.”
-- 《대리사회》 중에서

훈의 시대 - 10점
김민섭 지음/와이즈베리

우리 사회의 또 다른 ‘괴물’에 조요경을 비추다


1990년대 이전에 학창시절을 보냈던 세대라면 애국조회를 선명하게 기억할 것이다. 매주 월요일이면 전교생이 운동장에 모여 ‘국기에 대한 맹세’를 하고, 교장 선생님의 ‘훈화’를 들은 뒤 ‘교가’를 부르고, ‘교훈’과 ‘급훈’이 칠판 옆 높은 곳에 내걸린 교실로 들어가곤 했다. 그때 학교에서 익힌 것은 국영수 같은 교과 지식뿐만이 아니었다. 온갖 형식의 ‘가르침’, 요란한 구호, 기념일 노래 등을 영혼 없이 부르고 외치면서 부지불식중에 그것에 내포된 은밀한 함의에 젖어들곤 했다. 이러한 무감각한 의례는 학교를 졸업한 뒤에도 끝나지 않고 군대는 물론 회사 등 사회에 진출해서도 계속 이어진다. 이 과정을 거치며 개인은 점차 비판적인 사유 없이 온갖 ‘가르침의 말씀’을 받아들일 만큼 수동적인 인간으로 변한다.

전작《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대리사회》등으로 출판계의 주목을 받았던 김민섭 작가는 와이즈베리 신작《훈의 시대》에서 이러한 ‘가르침의 말씀’에 조요경(照妖鏡, 《서유기》에서 요괴가 아무리 변신을 해도 본모습이 드러나게 하는 거울)을 들이댔다. 작가에게 ‘가르침의 말씀’은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해서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지만 어두운 곳에 숨어 개인이 주체로 서는 것을 방해하는 ‘괴물’이다. 이 괴물은 “개인을 시대에 영속시키는 동시에 끊임없이 지워왔으며 특히 사유의 범위를 그 함의의 테두리에 가두고 나아가지 못하게 한다는 점에서 문제적”이다. 작가는 이 괴물을 ‘규정된 언어’라고 정의하면서 ‘훈訓’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훈’이라는 말은 우리가 흔히 받아들이듯이 ‘가르침’의 의미다. 가정(가훈), 학교(교훈), 군대(훈련), 회사(사훈), 국가(훈령)에 이르기까지, 주로 누군가를 가르치거나, 아니면 위계적으로 강요하는 ‘계몽의 언어’인 동시에 ‘자기계발의 언어’로 우리 사회 구석구석에 존재한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훈’은 한 개인이 가정, 학교, 회사 등 생애주기에서 반드시 거쳐야 할 모든 공간의 언어로 전달된다. 따라서 훈이란 시대가 개인에게 품은 ‘욕망’이다. 일상 공간에서 지속적으로 강요되는 훈에서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으며, 한 개인의 몸을 만드는 데 직간접적인 영향을 받는다. 이렇게 본다면 훈은 결국 한 인간의 격格을 결정하는 중요한 사회적 기제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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