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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도서

한국 남성을 분석한다 / ‘남자다움’에 대한 강박

by 글쓰남 2017. 6.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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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다움’에 대한 강박에 쫓기며

여성 혐오로 불안을 달래는 

한국적 남성성에 대한 전방위적 탐구 


가부장제 사회에서 ‘남성’은 ‘보편’이자 유일한 ‘인간’이다. 남성성은 여성성을 비하함으로써 성립된다. “계집애 같다” “너 게이냐?” 같은 말이 남자들 사이에서 욕으로 쓰이는 것은 여성이나 퀴어가 남성성이 없거나 부족한, 열등한 존재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진정한 남자로 인정받으려면 남자다운 몸, 남자다운 성격, 남자다운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그러나 이제 그 남자다움의 신화가 깨지고 있다. 혼자 가정을 책임지는 가부장이 될 수 없는 상황에서 많은 젊은 남자들이 역차별의 억울함을 호소하거나 ‘일베’나 남초 커뮤니티에서 사이버 마초로 변신해 현실과 멀어지고 있다. 전통적인 남성의 역할은 할 수 없거나 하고 싶지 않지만 전통적인 지위는 유지해야겠다는 비합리적 사고. 이런 어긋남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가부장 없는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주의에 필요한 새로운 전략은 무엇인가? 


성 문화 연구 모임 ‘도란스’의 두 번째 책 《한국 남성을 분석한다》에는 각기 다양한 지적 배경에서 당대 한국 남성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제공하는 여섯 편의 글이 실려 있다. 필자들은 한국 남성의 현재를 다각도로 분석하면서, 남성다운 몸 ․ 심리 ․ 문화는 현실이 아닌 규범이자 신화임을 밝힌다. 일제 강점기 이광수와 김유정과 이상 같은 남성 작가들의 삶과 작품을 통해 한국 근현대사를 관통하는 ‘식민지 남성성’의 기원을 확인하고, 그동안 남성성의 목록에서 지워졌던 레즈비언과 트랜스남성(female-to-male)의 남성성을 분석함으로써 기존의 남자다움의 규범을 해체하고 동시에 남성성에 대한 다른 해석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남성성의 위기와 가부장제의 쇠퇴에 관한 담론은 페미니즘의 주요 관심사이다. 지난 30년 동안 전 세계적 경제 위기가 심화된 결과, 근대적 남성성의 핵심인 생계 부양자로서 남성의 역할은 불가능해졌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한국의 중산층을 포함한 대부분의 가정 경제는 외벌이로 지탱할 수 없게 된 지 오래다. ‘고개 숙인 아버지’의 쓸쓸한 뒷모습을 보며 자란 아들들은 이제 더는 여자를 먹여 살리는 것을 남자의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남자들은 사회가 원하는 성 역할을 할 수 없게 되었지만, 여전히 남성으로서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어떻게 된 일일까. …… 

《한국 남성을 분석한다》는 남성으로서 성 역할이 점점 불가능해졌는데도 남성으로서 지위를 유지하기를 바라는 한국 남성의 현재를 다각도에서 분석하고자 한다. 이 책의 중요한 목표 중 하나는 젠더 연구로서 남성성을 분석하는 인식론과 방법론을 제안하는 것이다. 이 책의 필자들은 남성성과 관련한 신체, 심리, 문화는 실재가 아니라 규범이자 신화라고 본다. 또한 페미니즘이 여성을 여자다움에서 벗어나도록 하여 자기 자신으로 살 수 있게 하는 이론이라면, 남성 역시 남자다움의 구속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해주는 사상이며 그것이 모두에게 좋은 일이라는 데 동의한다. 이 책에서 우리는 기존의 남자다움의 규범을 해체하는 동시에, 남성성에 대한 다른 해석의 가능성을 열고자 했다. 

- <들어가는 글>(권김현영) 중에서 


‘한국 남자’는 어쩌다 욕설이 되었나? 

― ‘남자의 위기’ 담론과 ‘남자다운 남자’의 허상을 넘어, 

한국의 지배적 남성 문화를 분석하는 새로운 인식론과 방법론 


인류 역사상 남성은 언제나 인간 보편이자 ‘일반’이었고 여성은 항상 보편의 ‘특수’로 존재해 왔다. 여성은 ‘여비서’ ‘여교사’ ‘여기자’처럼 ‘여성’이라는 특수의 위치를 드러내는 이름으로 불리지만, 남성은 노동자, 시민, 유권자, 청년으로 불리며 보편을 대표해 왔다. 보편이 아니기 때문에 잊히고 묻힌 여성의 목소리를 복원하고 재해석하는 것이 여성성 연구의 한 방식이라면, 남성성 연구는 이와 다른 방식을 취할 수밖에 없다. 《한국 남성을 분석한다》는 바로 그러한 남성성 연구, 특히 한국 남성성 연구의 한 방향을 제시해주는 책이다. 권김현영, 루인, 엄기호, 정희진, 준우, 한채윤 6명의 필자들은 역사와 문화를 넘나들고, 문학과 철학, 인류학을 바탕 삼아, 한국적 남성성의 기원에서부터 오늘날 전통적 남성성과 변화한 현실 사이에서 분열하는 남성들의 모습까지 한국 남성을 다양한 각도에서 분석한다. 나아가 보편이 아닌 차이로서 ‘남성성들’의 목록을 다시 설정하고자 한다.


한국 남성을 분석한다 - 10점
권김현영 엮음, 권김현영.루인.엄기호 외 지음/교양인

<한국 남성의 식민성과 여성주의 이론>(정희진)은 이른바 ‘남자답지 못한 남자’가 여성을 더욱 억압하는 종속적(주변적) 남성성, ‘식민지 남성성’에 대한 시론이다. 여기서 정희진은 먼저 근대 자유주의부터 후기 구조주의까지 ‘남성성’을 분석하는 기존 여성주의 이론들을 명쾌하게 정리한다. 그리고 이러한 서구의 이론으로는 한국적 남성성을 제대로 해명할 수 없음을 지적하면서 한국 근현대사를 관통하는 ‘시대 정신’이자 문화 권력으로서 ‘식민지 남성성’에 주목한다. 

한국의 지배적 남성 문화의 성격을 ‘식민지 남성성’으로 규정하는 정희진의 글에 이어 권김현영은 <근대 전환기 한국의 남성성>에서 바로 그 ‘식민지 남성성’의 역사적 기원과 구체적인 내용을 밝힌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근대 전환기와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조선에 남성과 여성에 대한 성별 이분법적 담론이 등장한 배경과, 근대적 의미의 보편적 개인이 될 수 없었던 식민지 남성의 위치를 고찰한다. 

<남성 신체의 근대적 발명>(루인)은 세계사와 20세기 한국사를 넘나들며 ‘남자다운 몸’, 즉 음경을 중심으로 한 신체적 ‘남성성’의 규범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추적한 ‘근대 남성 신체 발명기’이다. 한국의 경우, 특히 1960년대 이후 박정희 정권의 산업 발전과 군국주의 기획의 일환으로서 ‘남성성’이 관리의 대상이 되었으며, 이것은 징병 신체 검사의 항목들과 트랜스젠더퀴어에 대한 억압에서 잘 드러난다. 

<보편성의 정치와 한국의 남성성>(엄기호)은 신자유주의 이후 새롭게 등장한 한국적 남성성의 양상을 크게 두 부류로 나누어 분석한다. 성차별적 현실에 맞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여성들에게 남자도 피해자라며 항변하고 스스로 ‘찌질함’을 내세우는 젊은 남성들이 나타났고, 그러자 이들을 비판하며 스스로 ‘페미니스트’라고 선언하는 남성들이 새롭게 등장했다. 

<이성애 제도와 여자의 남성성>(한채윤)과 <트랜스남성은 어떻게 한국 남자가 되는가>(준우)는 흔히 남성성이 없거나 부족한 존재로 여겨지는 레즈비언과 트랜스남성의 남성성 문제를 분석함으로써, 우리 사회에 통용되는 ‘남성성’의 실체를 거꾸로 재구성하게 도와준다. 한채윤은 풍부한 역사적 자료를 바탕으로 삼아 레즈비언에 대한 편견(“레즈비언은 남자를 혐오하거나 선망해서 여자를 사랑하는 여자”)의 핵심에 남성성은 남자만 소유한다는 관념이 있음을 논리적으로 규명한다. 한채윤의 글이 ‘여자의 남성성’을 설명한다면, 준우의 글은 ‘평범한 남자’가 되고 싶어 하는 트랜스남성의 욕망을 분석한다. 특히, 준우의 글은 다섯 명의 트랜스남성들과 심층 면접 인터뷰를 통해 당사자의 언어를 가시화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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