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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도서

죽은 군대의 장군

by 글쓰남 2019. 9.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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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군대의 장군 (반양장) - 10점
이스마일 카다레 지음, 이창실 옮김/문학동네

이스마일 카다레의 문학은 이 작품에서 시작되었다!

이스마일 카다레만큼 매 작품에 자신이 나고 자란 땅의 역사와 정서를 깊이 있게 드러내는 작가는 드물 것이다. 유럽의 변방, 발칸반도의 작은 나라 알바니아는 오랜 역사 동안 끊임없이 외세의 침략에 시달려왔고, 20세기 초 비로소 독립하여 왕정을 수립했으나 곧 제2차 세계대전으로 파시스트 군대의 침략을 받았다. 전쟁 후에는 엔베르 호자의 혹독한 독재 체제 아래 유럽에서 가장 폐쇄적인 공산주의 국가의 길을 걸었다. 이러한 굴곡진 역사 속에서 형성된 알바니아 특유의 민족 정서와 관습, 여러 외부 문화가 혼재된 독특한 문화, 그리고 비극적인 현대사의 면면은 카다레 문학 세계의 근간이 되었고, 카다레는 이를 작품 안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승화시키며 자신의 조국 알바니아를 알려왔다. 그리고 그 출발점이 된 작품이 바로 1963년에 발표된 그의 첫 장편소설 『죽은 군대의 장군』이다.

이 작품에서 카다레는 특별한 방식으로 알바니아의 면면을 드러낸다. 알바니아인의 입장에서 기술한 것이 아니라,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알바니아의 적국이었던 나라의 장군과 사제, 즉 외국인의 눈에 비친 알바니아의 모습을 그려내는 것이다. 험한 지세와 음울한 날씨, 무뚝뚝하면서도 조용한 분노에 휩싸인 알바니아인들, 외국인 사제가 들려주는 그 나라 사람들의 뿌리깊은 정신 구조 등, 알바니아인 스스로는 잘 깨닫지 못할뿐더러 자신들의 입으로 말하기 어려운 요소들을 제삼자의 눈으로 바라봄으로써 설득력과 보편성을 부여한다. 작가 자신이 알바니아인이면서도 감정을 배제한 객관적인 묘사로 알바니아를 잘 드러낼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택한 것이다.
또한 이 작품에서는 카다레가 다른 여러 대표작에서 보여주었던 독특한 소재와 형식의 조짐을 엿볼 수 있다. 호메로스, 그리스인과 트로이인들에 대한 언급은 『H서류』의 소재를 예고하고, 외국인 사제의 입을 빌려 『부서진 사월』의 중심 소재인 복수의 관습 ‘카눈’을 설명하며, 『돌에 새긴 연대기』(문학동네 출간 예정)에 등장하는 간판 없는 도시는 갈봇집 이야기를 회상하는 장(7장)에 나오는 마을을 그대로 옮겨놓았다고 해도 무리가 없다. 즉, 이 놀라운 첫 장편소설에 이후 발표될 대표작들의 탄생이 암시되어 있는 것이다. 이 책이 유럽 여러 나라에서 출간된 후 많은 언론과 비평가들의 주목을 받은 것도 그런 걸작의 태동을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작품은 1999년 프랑스 르몽드 지가 뽑은 ‘20세기 100대 소설’에 선정되었고, 1983년에는 아이러니하게도 작품에서 알바니아의 적국으로 묘사되는 이탈리아에서 영화화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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