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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도서

오후의 이자벨

by 글쓰남 2020. 8.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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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의 이자벨 - 10점
더글라스 케네디 지음, 조동섭 옮김/밝은세상

2010년 무려 200주 동안 베스트셀러를 기록한 《빅 픽처》 작가 더글라스 케네디의 2020년 신작장편소설 《오후의 이자벨》이 출간되었다. 더글라스 케네디는 뉴욕 맨해튼 출신으로 프랑스 파리, 영국 런던, 호주 멜버른, 아일랜드 더블린, 몰타 섬 등지에서 지내는 한편 60여 개국을 여행하며 쌓은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왕성한 창작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의 소설은 생생하고 치밀한 묘사, 독특하고 매력적인 인물들, 통찰력과 지성이 돋보이는 이야기, 스피디한 전개, 의표를 찌르는 반전으로 독자들을 사로잡으며 책에서 손을 놓을 수 없게 한다. 현재 국내에 소개된 그의 소설은 모두 합해 15권이다. 새로운 소설을 출간할 때마다 크게 주목받았고, 모든 작품들이 꾸준히 사랑받는 스테디셀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특히 《빅 픽처》, 《모멘트》, 《템테이션》, 《더잡》, 《위험한 관계》 등은 베스트셀러이자 스테디셀러로 오랫동안 독자들로부터 사랑받았다. 최근에는 《오로르》 시리즈를 통해 청소년문학 작가로도 유감없는 실력을 발휘하고 있다. 조국인 미국보다는 오히려 유럽에서 왕성한 창작활동을 펼치고 있고, 2006년 프랑스에서 문화공로훈장을 받았고 《빅 픽처》, 《데드 하트》, 《파리5구의 여인》이 영화로 만들어졌다. 지난 10년 간 국내 토털판매부수 7위(2019년 교보문고 집계)를 차지할 만큼 국내에서의 인기도 뜨겁다.


누구나 인생의 빛이 되어줄 사랑을 만나길 갈망한다. 만남에서 희망을 찾고, 사랑하는 사람과 미래를 함께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인생의 모든 이야기가 다 그렇지만 특히 사랑에 관한 한 늘 자신이 상상하던 대로 이야기가 펼쳐지지는 않는다.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들끼리 만나 연애하고 결혼하더라도 함께하는 시간이 길게 이어지다보면 어느새 애틋하고 절실했던 감정은 희미해지고, 서로에게 무감각해진 가운데 권태로 이어지게 된다.


《오후의 이자벨》은 우리가 삶을 통해 만나게 되는 사랑에 대해 매우 솔직하고 파격적인 메시지를 던지는 소설이다. 더글라스 케네디는 이미 《모멘트》를 통해 운명적인 만남과 절절한 사랑에 대해 이야기한 바 있다. 아무리 운명적인 상대를 만나더라도 극복하기 힘든 현실의 장벽에 가로막히게 되면 함께하는 미래로 이어지지 않는다. 

《모멘트》에서는 페레스트로이카 시절 미국 여행 작가와 동베를린 출신 여성이 만나 서로 뜨겁게 사랑하지만 이념 대결로 치닫던 동서냉전시대의 장벽에 가로막혀 결국 좌초하게 되는 이야기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 이자벨은 번역 일을 하는 프랑스의 기혼 여성이고, 샘은 로스쿨 입학을 앞두고 파리에 여행 온 대학생이다. 

 

기혼 여성과 여행자인 대학생의 만남이라면 단발성으로 끝나게 되리라 예상하기 쉽지만 두 사람 관계는 샘이 다른 여성을 만나 결혼한 이후로도 오랫동안 계속 이어지게 된다. 이 소설은 대서양을 사이에 둔 미국 남자 샘과 프랑스 여자 이자벨이 오랜 세월 동안 어떻게 사랑을 이어가는지 다루는 한편 가정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문제들을 매우 설득력 있게 그리고 있다.


두 사람의 만남은 파리의 어느 서점에서 열린 출판기념회에서 시작된다. 첫눈에 이자벨에게 매혹된 샘은 다시 만나볼 수 있기를 희망하고, 그 마음이 가닿은 듯 이자벨 역시 명함을 건네며 한번 연락하라고 한다. 샘은 베르나르 팔리시 가에 있는 이자벨의 작업실로 찾아가고 이후 일주일에 사나흘 간격으로 두 번의 만남을 이어간다. 

 

연애경험이 많지 않은 스물한 살 청년 샘은 난생처음으로 완벽한 소통을 이룰 수 있는 사랑을 만났다는 기쁨과 함께 미래에 대한 희망을 품게 된다. 누구나 사랑에 빠지면 눈앞에 보이는 현실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게 된다. 필사적으로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할 미래를 꿈꾸게 된다. 아무리 실현 불가능해 보이는 장벽이 가로놓여 있더라도 함께하는 사랑에 대해 끝없이 집착하게 된다.

 

결혼이라는 제도는 인류의 역사와 궤를 같이 해오고 있다. 결혼해 가정을 꾸리고, 자녀를 낳으며 살아가는 건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지극히 당연한 삶의 진로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결혼한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결코 가볍지 않은 책임과 의무가 주어지지만 다른 길을 모색하기 쉽지 않다. 안정적인 삶과 행복을 바라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해 함께 미래를 열어가길 기대한다. 《오후의 이자벨》의 주인공 샘은 나이 어린 대학생이고 미혼이다. 이자벨은 샘보다 무려 열다섯 살이나 많고, 기혼이다. 

 

이자벨은 샘을 사랑하지만 가정을 유지하면서 관계를 이어가려고 한다. 샘은 이자벨이 남편과 헤어져 미국에 와서 함께하길 기대하지만 아직 로스쿨 학생 신분이라 두 사람이 생활하는 데 필요한 여건이 전혀 마련되어 있지 않기에 자신의 주장을 강하게 펼칠 수도 없는 형편이다. 결국 두 사람의 만남은 이자벨이 정한 오후 5시, 베르나르 팔리시에 있는 작업실에서의 만남으로 국한된다. 이자벨의 입장으로는 파리의 지인들 눈에 띄지 않아야 하기 때문에 은밀한 관계를 이어가길 바란다. 이자벨은 결혼생활에 대한 생각을 알렉상드르 뒤마가 했던 말을 인용해 표현한다.


‘결혼이라는 사슬은 대단히 무거워서 들어 올리려면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할 때도 있다.’- 알렉상드르 뒤마
흔히 ‘외도’ 혹은 ‘불륜’으로 치부되는 관계지만 샘과 이자벨은 평생 그 사랑을 놓을 수 없다. 본문 중에 나오는 ‘우리가 매일 만날 수 없고, 우리 관계를 사람들 앞에 당당히 드러내지 못하고 항상 은밀해야 하기에 늘 절실하고 격렬했다.’라는 말이 적절해보이지만 딱히 그런 부분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사랑 이야기가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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