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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도서

불구의 삶, 사랑의 말 - 어른이 되고 싶지 않은 이들을 위하여

by 글쓰남 2017. 5.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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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아무것도 아닌 것 같다면 

당신은 세상을 정확하게 느끼고 있는 것이다


모든 비딱하고 남루하고 어정쩡한 삶에게, 

불행과 고통을 온몸으로 감각하는 이들에게 

있는 힘껏 응답하는 미학자의 시적 에세이


불구의 삶, 사랑의 말 - 10점
양효실 지음/현실문화

삶은 고통스러운데 왜 우리는 여전히 살아 있어야 하는가. 인생이란 과연 살 만한 가치가 있는가……. 우리에게도 한 번쯤 불현듯 다가왔던 물음들이다. 다만 그것이 오래가지 못했을 뿐. 예민한 사람이라면 몇 번이고 다시 찾아오는 물음일 수도 있다. 그리고 여기에 저자가 이어 붙이는 질문들. 예술가는 왜 이상하고 그들의 말은 왜 우리 귀에 잘 안 들리는가, 상처는 왜 아름다운가, 왜 문제가 곧 가능성이 되는가, 왜 고통의 전시가 사람을 성장시키는가……. 저자는 이 두 계열의 물음이 다르지 않은 것임을, 모두가 예민한 존재들의 언어임을 보여주고자 한다. 

미학자이자 비평가인 양효실은 강단에서 오랫동안 학생들과 함께 예술작품을 보고 시를 읽었다. ‘학생들이 더러운 말을 쏟아내는 수챗구멍’이 되고 싶은 그녀는 삶 자체를 예술로 빚어 낸 이들의 작품을 통해 학생들과 거듭 대화를 시도했다. 이내 인문대 선생의 임무를 좌절시키는 말들, 결코 아무 데서나 쉽게 들을 수 없는 말들, 아픈 말들이 불쑥불쑥 터져 나왔다. “공부를 잘하면 행복해진다고 하는데 행복이 뭔지 모르기 때문에 공부를 안 해요”라고 말하는 학생 앞에서, 도덕에 물들지 않은 사람들 앞에서 그녀는 온몸을 떨었다. 더 아프고 더 분노하고 더 질주하는 이들의 반응이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온몸으로 불행과 상처를 받아 안으면서도 막연하게 품고 있을 수밖에 없었던 그 고통을 언어로 만들어 그것을 전시하고 노래하고 즐기는 자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불구의 삶, 사랑의 말』은 제대로 성장하지 못한 어른들, 겉모습은 어른이지만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들, 자신만큼이나 약한 이들을 학대할 뿐 여전히 화해하거나 사랑할 줄을 모르는 이들을 위한 책이다. 



우리의 고통을 표현할 언어를 탐색하며 

상식을 거스르고 고통과 광기를 끌어안다


우리는 정상적인 사람이 되기 위해, ‘남들처럼’ 살기 위해 학교에 가고 직장을 다니고 돈을 번다. 즉 ‘어른’이 되기 위해 애쓰고 있다. 하지만 어른이 된다는 게 그렇게까지 바라고 추구할 만한 것일까? 물론 우리는 알고 있다. 우리를 짓누르는 불안감과 두려움이, 한 발짝만 벗어나면 낭떠러지로 떨어질 것이라는 생각이 우리를 그리로 내몬다는 것을. 그것이 세상의 법칙이라고 우리는 믿고 있다. 


하지만 세상의 법칙 같은 건 없다는 걸 일찌감치 간파한 이들은 이 세상을 비웃고 겉돈다. 우리는 이 겉도는 존재들의 이름을 알고 있다. 그들의 이름은 (비행)청소년, 떠돌이, 가수, 예술가, 그리고 시인이다. 이들은 모두 사회적으로 주어진 이름을 거부하고 그 이름에서 탈출하기 위해 발버둥 치며, 말 그대로 버려진 삶을 살아간다. 하지만 저자는 우리가 이 버려진 삶을, 세상의 이름을 거부한 이들을 부정한다면 우리의 진정한 모습 또한 찾을 수 없다고 역설한다. 

『불구의 삶, 사랑의 말』은 불행과 상처를 부정하는 세태를 이처럼 정면으로 거스른다. 행복과 성공에 지친 이들의 곁에 힐링과 위로만이 넘치는 지금, 우리는 불행과 고통이 우리를 얼마나 성장시키는지 외면하고 있다. 우리가 오로지 정상적인 삶만을 추구할수록, 우리는 세상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는 불구가 되어 갈뿐이다. 문제는 이런 불구의 삶을 표현할 언어가 우리에게 없다는 데 있다. 그렇다면 우리의 고통을 정확하게 표현할 말을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저자는 예술에서 그 실마리를 발견한다. 여기서 예술이란 거친 펑크록이고 벌거벗은 청소년들이 뛰노는 사진이며 아버지를 찢어발기는 시어(詩語)들과 세상의 규칙을 비웃는 소설들이다. 그리고 고통과 광기로 가득 찬 삶조차 “좋다. 다시 한 번!”이라고 외치는 미친 철학자 니체와, 금치산자 같은 삶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이곳저곳을 떠도는 시인 최승자가 여기에 함께한다. 이런 예술가와 철학자들의 말, 존재를 가로지르며 우리를 깨우는 말이 바로 시(詩)다. 이 책은 그 시들을 통해 우리 삶을 뒤흔드는 바람이 되길 희망하는 시적 에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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