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도서

나는 뇌가 아니다 - 칸트, 다윈, 프로이트, 신경과학을 횡단하는 21세기를 위한 정신 철학

글쓰남 2018. 9. 6. 0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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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뇌가 아니다 - 10점
마르쿠스 가브리엘 지음, 전대호 옮김/열린책들

『나는 뇌가 아니다』는 독일에서 가장 촉망받는 철학자 마르쿠스 가브리엘이 내놓은 도발적인 철학서이다. 칸트, 다윈, 프로이트, 신경과학을 넘나들며 정신 철학의 주요 개념들을 다양한 비유와 독창적인 생각 실험, 위트를 버무려 대중의 눈높이에서 풀어 놓았다. <철학자들은 자신들의 연구가 우리의 인간상에 대해서 함축하는 바를 대중에게 최대한 많이 알릴 의무가 있다>는 발언에서 보듯, 저자는 전문 용어를 자제하고 미드, SF 영화, 불상, 뱀, 고양이 등 우리가 일상에서 접할 수 있는 대상들을 동원하여 독자들의 이해를 높인다. 

그럼에도 이 책이 다루는 문제의식들은 결코 만만치 않다. 전작 『왜 세계는 존재하지 않는가』가 유물론적 세계관(오직 물질적 대상들만 존재한다는 주장)의 허상을 무너뜨렸다면, 이 책은 인간의 정신, 다시 말해 생각하고 느끼며, 정치, 경제, 예술 활동 영위하는 정신적인 생물인 인간 그 자체를 다룬다. 

<나는 대체 누구인가, 또는 무엇인가?>라는 물음은 오랫동안 정신 철학의 전통 속에서 다뤄져 온 문제였다. 하지만 오늘날 이 자기인식의 물음은 자연과학의 분과 학문인 신경과학에게 점차 자리를 넘겨주고 있고, 그 결과 <우리는 우리 뇌다>라는 언술이 직접적으로든(디크 스왑의 동명의 저서) 암시로든 우리 시대를 물들이고 있다. 가브리엘이 새롭게 쓰는 <21세기를 위한 정신 철학>은 우리 시대에 만연한 신경중심주의(한마디로, 우리를 뇌 또는 중추신경계와 동일시하는 주장)에 맞서 인간의 본질과 자유를 규명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가브리엘은 데카르트, 칸트, 피히테, 프로이트 등 정신 철학의 거장들이 다뤄 온 의식, 자기의식, 《나》, 사유 등의 핵심 개념들을 정리하면서, 각각의 개념들이 어떤 사상가들에 의해 어떤 배경에서 만들어지고 어떻게 우리 어휘 안으로 진입했는지 따져 묻는다. 궁극적으로 가브리엘이 목표하는 바는 인간의 자유(자유 의지)를 옹호하는 데 있다. 인간은 무언가에 조종되는 꼭두각시가 아니다. 가브리엘은, 비단 뇌뿐 아니라 <신, 우주, 자연, 사회가 우리의 등 뒤에서 우리를 자유롭지 않게 만든다는 통념에 맞서> 인간이 철두철미하게 자유로운 존재임을 논증한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 <자유>로부터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절대적인 가치, 곧 <인간 존엄>이 비롯한다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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