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국내도서

5년 만에 신혼여행

by 글쓰남 2016. 8. 26.
반응형

                                 


5년 만에 신혼여행 - 10점           
장강명 지음/한겨레출판



“한국은 싫지만, HJ는 좋다”

인생 앞에 굴복하지 않는 젊은 부부의 신혼여행 분투기


앞으로 우리 부부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이런 에세이를 써놓은 주제에, 내가 술에 취해 바람을 피우게 될지도 모르고, HJ가 운명적인 사랑을 발견해 나를 떠날지도 모른다. 그러면 아마 이 책은 결혼과 사랑과 믿음에 대한 지독한 아이러니의 사례가 되겠지. 나는 두고두고 놀림감이 될지도 모른다. _241쪽


장강명의 첫 에세이 《5년 만에 신혼여행》이 출간되었다. 이 책은 짧게 말하면, 소설가 장강명의 뒤늦은 신혼여행 이야기이고, 길게 말하면, 소설가 장강명이 2014년 11월에 HJ와 3박 5일로 보라카이에 신혼여행을 다녀온 여행 이야기이다. 그리고 제대로 말하면, 한국에서 자라서, 자신이 희망하던 것들 앞에서 좌절하고, 번번이 부모와 부딪치고, 미래에 대한 기대와 실망을 번갈아 하던, 그리고 우연인지 운명인지 모르게 대학에서 HJ를 만나 사랑의 여러 빛깔을 경험하고 있는, 우리와 하나도 다를 것 없는 한 남자 장강명의 이야기이다.

3박 5일간의 신혼여행을 하며 작가는 자신의 청춘, 연애, 결혼, 그리고 결혼 후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꺼내놓는다. 별 희망이 안 보이던 자신에게서 어떻게 희미하게나마 무언가를 건져냈는지, 첫사랑, 첫 섹스, 첫 직장 생활 같은 것들에서 어떻게 벗어났는지,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HJ와 어떻게 연애를 하고 결혼을 했는지, 그리고 끝내 한국을 떠나지 않고 지금까지 살아왔는지. 그러므로 《5년 만에 신혼여행》은 연애와 결혼, 가족, 인생에 대한, 그리고 그 모든 것들에 굴복하지 않은 채 살아온 장강명의 인생 분투기라고 해도 될 것이다. 그런데 소설가 장강명은 왜 5년 만에야 신혼여행을 떠나야 했을까?


우리는 어떻게 시시한 세상을 견디며 청춘을 보내야 할까? 


시시한 세상이고, 찌질한 청춘이다. 아무리 둘러봐도 우주의 신비 같은 건 보일 기미가 없다. 시대의 흐름을 읽는 것도, 우리 주변의 사람들을 깊이 관찰하는 것도 모두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일 같다. 우리가 “사랑할 수 있는 건 나를 포함해 인간 두 명, 화분 몇 개, 동물 한두 마리 정도가 고작”이며 그것 또한 어지간한 마음가짐으로는 지켜내기 어렵다. 무언가 해보려고 할 때마다 예고도 없이 찾아온 시시콜콜한 일들이 우리의 평온한 일상을 뒤흔들고 지나가버린다. 그것도 거의 매일. 연애는 어렵고, 결혼은 더 어렵다. 결혼식이나 예단, 예물만 생각하면 머리가 아프다. 아이는 상상할 수도 없다. 혼자 사는 것도 만만치 않다. 그렇기에 《5년 만에 신혼여행》을 집어 들며 우리는 물을 수밖에 없다. 장강명은 어땠을까? 메이저 신문기자 출신에, 문학상 네 개를 휩쓸며 한국문학의 대표 작가로 떠오른 그의 청춘은 그의 지금은 어떨까?

대학을 9학기째 다니고 있으면서도 꼭 선후배와의 만남 자리는 나가고, 부모의 집을 나와 고시원에 살다가 매트리스랑 모텔용 냉장고만 두고 원룸에서 살고, 공업수학 강의를 들으며 머리의 한계를 느끼고, 언론사 준비 스터디를 쫓아다니며 신문사와 방송사 입사 준비를 하지만 모두 떨어지고야 마는, 결국 어느 건설사에 취직하지만, 거기서도 얼마 못 가 그만두고야 마는 청춘, 어떤가? ‘장강명’이 아니라 ‘장공명’이나 ‘장강수’ 같은 이름을 넣더라도 다를 거 없는 청춘이다. 그리고 그런 청춘은 소설가가 되고 신혼여행을 가서도 계속된다. ‘내가 소설가로 성공할 수 있을까?’ ‘이번 책은 얼마나 팔릴까?’ 하고 생각하니 말이다. 


내가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내가 옳은 선택을 한 걸까? 이렇게 사는 게 맞는 걸까? 마흔이 되어서까지 그런 걸 고민한다는 게 이상했다. _21쪽


마흔이 되어서도 그런 걸 고민한다는 게 이상하다는 작가를 보면서 무언가 시시함이 좀 줄어드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면 그것만으로 괜찮은 거 아닐까. 적어도 이 시시한 세상을 견디고 있는 게 나 혼자는 아니니까.


야무지게 재미있는 걱정이 될 정도로 솔직한


《5년 만에 신혼여행》은 장강명의 ‘첫’ 에세이다. 장강명이 에세이라고? 에세이도 재밌을까? ‘첫’이란 늘 기대와 우려가 한데 섞여 찰흙처럼 단단히 뭉쳐지는 법이다. 다행히도 첫 장 ‘2001년~D-2개월: 결혼을 해야 하는 데드라인과 사랑의 메신저’를 펼치자마자 그런 걱정과 우려는 말끔히 씻겨나간다. 눈이 밝은 사람이건 눈이 어두운 사람이건 이 에세이가 엄청나게 재미있다는 사실은 알 수 있다. 그러니까 이 책은 그냥 재미있는 것도 아니고 “야무지게” 재미있다. ‘더블린에 있는 것과 사장님들이 정하는 것’ ‘섭식 장애가 있는 듯한 커플과 바보 같은 눈물’ ‘숨을 쉬는 법과 사도마조히즘의 세계’ ‘승합차의 최종 도착지와 유황 지옥에 빠지는 기분’ 등 열여덟 장의 제목을 읽는 것만으로도 재미있으니 말을 해서 더 뭐할까. 그럼 재미가 다일까? 물론, 아니다. 작가의 지극히 개인적인 일화들은 보라카이 화이트 비치에서 선탠 중인 사람들처럼 책 곳곳에 누워 있다. 어쩌면 치부일지도 혹은 단점이거나 숨기고 싶을지도 모를 그런 일들이 작가의 목소리로 아무렇지 않게 쓰여 있다. 《한국이 싫어서》, 《표백》, 《호모도미난스》 등을 읽으며 작가에게 궁금한 게 생긴 독자라면 이 책을 읽으면 된다. 그러면 “아!” 하고 ‘장강명’이란 소설가와 ‘장강명’이란 사람을 동시에 알 수 있다.

우리는 아이를 갖지 않고 둘이서 잘 살기로 했다. 그런 결심을 하고 나는 신촌의 비뇨기과에 가서 정관수술을 받았다. 어영부영하다가 결심이 흔들릴 게 두려웠다. 비뇨기과 의사가 “자녀는 몇 분입니까?”라고 물었을 때 “둘 있습니다”라고 거짓말했다. _15쪽


우리 집 창고 문에는 ‘효도는 셀프’라는 스티커가 붙어 있다(HJ가 붙였다). 내 부모님은 나에게 효도를 받고, HJ의 부모님은 HJ에게 효도를 받으면 안 될까? 기타노 다케시는 가족에 대해 “누가 보지만 않으면 내다 버리고 싶은 존재”라고 말했다. 내 가족관은 기타노 다케시보다 훨씬 건강하다. 나는 내 가족을 아무도 내다 버리고 싶지 않다. 다만 그들을 서로 만나게 하지 않을 뿐이다. 그들이 서로를 대형 폐기물로 여기지 않게 하기 위해. _30~31쪽


그래서 책을 읽으며 우리는 ‘3박 5일간’이 아니라 마치 ‘35년간의’ 여행 에세이를 읽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런 걸 써도 되나? 하고 걱정이 될 정도로 솔직하고 거침없으니까. 생각해보자. 이런 에세이가 또 있었나?


인생이 행복한지 불행한지는 계속 살아보는 수밖에


내 생각에는 전형적인 한국식 결혼식은 빼빼로데이와 매우 비슷하다. 언젠가부터 점점 호사스러워지고 있고, 장식이 본질을 압도하고 있으며, 이제는 거대 산업이 되어버렸다. 업체들이 호사스러움을 부추기고 있으며, 소비자들은 모두 그게 허세이고 바보 같다는 걸 알면서도 그 상술에 넘어가고야 만다. 왜 이런 미친 짓거리가 사라지지 않을까? 내 생각에 그 이유는, 모든 사람들이 이 미친 짓거리에 협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미친 짓거리에 협조하지 않는 자들을 “걔 원래 좀 특이하잖아”라며 이단자 취급하기 때문이다. 그 미친 짓거리를 성대하게, 무의미하게 치러낼수록 찬탄을 사고 그 사실을 자랑스러워하기 때문이다. (48~49쪽)


HJ와 작가는 ‘좋은’ 결혼식을 올리고 싶었다고 말한다. 물론, 둘의 뜻대로는 되진 않았지만. 결국 두 사람은 결혼식을 올리지 않았고, 결혼식 대신 전철을 타고 마포구청에 가서 혼인신고를 하고, 구청을 나와서는 뷔페 대신 순댓국을 먹었다. 예단이고 예물이고 아무것도 없이 장모님이 사준 냉장고 하나를 가지고 20평대 전세아파트에 들어가 동거를 했다. 그렇게 시작한 결혼. 한국이 아니었다면 두 사람이 바라던 대로 (생각만큼 좋은 결혼식은 아니었을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결혼식을 올리지 않았을까? ‘가격 대비 성능비(수익을 생각하지는 않는)’를 따지고, (싸울 때도) 야무진 두 사람이니까 분명 ‘좋은’ 결혼식을 올렸을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다행이다. 두 사람이 결혼식을 올리기 위해 호주나 캐나다에 가지 않고 한국에 남아줘서. 한국에서 계속 지지고 볶고, 서로에게 다정하고 친절하게, 틈만 나면 “나 좋아?” 하고 묻고 “조금 좋아.” 하고 대답하며 살아줘서. 우리는 안다. 장강명과 HJ가 한국을 싫어한다는 걸, (뭐 싫어하진 않을지도 모르지만) 한국의 여러 지점을 마뜩잖게 여기고 있다는 건 안다. 하지만 둘은 서로가 끔찍하게 좋다. 그 사랑이 한국을 떠나지 않게, 더 즐겁고 의미 있게 살아오게 했다면 충분하지 않을까. 그거면 된 거 아닐까? ‘5년 만에 신혼여행’이든 ‘50년 만에 신혼여행’이든 인생이 행복한지 불행한지는 계속 살아보는 수밖에 없으니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