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타닐 - 벤 웨스트호프 지음, 장정문 옮김/소우주 |
2023년 6월, 토니 블링컨 미 국무부 장관의 중국 방문 기간 중 미국과 중국의 고위급 회담이 열렸다. 세계 두 강대국의 외교 테이블에 올라온 의제 중 하나는 펜타닐. 미국은 중국에 “펜타닐 사태를 촉발한 합성 마약과 펜타닐 제조에 쓰이는 원료 물질이 미국으로 유입되는 것을 막기 위해 협력”할 것을 강조했다. 미국의 펜타닐 위기는 도대체 어느 정도이기에 외교 문제로까지 확대된 것일까?
미국에서 다섯 번째로 큰 도시인 필라델피아의 켄싱턴 거리에는 골목마다 약에 취해 몸을 가누지 못하는 중독자와 마약상들이 넘쳐난다. 이 지역은 미국에서 가장 큰 마약 거리로, 경찰의 단속조차 불가능하다. 소문을 들은 외지의 중독자들까지 몰려들면서 이곳은 그야말로 마약 소굴로 변해 버렸다. 허리를 굽히고 팔을 늘어뜨린 채 좀비처럼 거리를 배회하는 중독자들로 인해 ‘좀비랜드’라고 불릴 정도다!
미국에서 약물 과다 복용으로 인한 사망자는 2019년 7만 명 정도에서 2021년에는 10만 7000여 명으로 50% 이상 증가했는데, 이 중 대부분을 차지하며 최근 기하급수적으로 사망자가 늘어나는 물질이 바로 펜타닐이다.
코카인이나 헤로인보다 훨씬 더 치명적인 펜타닐
합법적인 의약품인 펜타닐은 왜 가장 위험한 불법 마약이 되었나
펜타닐은 말기 암 환자나 수술 환자에서 심한 통증을 억제할 목적으로 개발된 강력한 마약성 진통제다. 모르핀의 100배, 헤로인의 50배에 달하는 약효를 보이며, 육안으로 식별하기 어려울 정도의 적은 양인 2mg만 투여해도 치명적이다. 따라서 펜타닐은 의사의 처방이 있어야만 사용할 수 있는 규제 약물이지만, 오늘날 이 약물은 불법으로 제조되어 전 세계에 유통되고 있다. 밀매업자들은 약효를 높이기 위해 다른 약물에도 펜타닐을 몰래 ‘혼합’한다. 그 결과 많은 펜타닐 피해자는 자신이 헤로인이나 코카인 등 다른 약물, 혹은 처방약을 복용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펜타닐에 중독되고, 펜타닐이 너무 많이 섞이면 목숨을 잃기도 한다.
이렇게 치명적인 펜타닐이 급속히 확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장기간 사용하면 지속적으로 쾌감을 주지 못하고 금단 증상을 완화할 뿐인 다른 약물과 달리, 강력한 약효를 지닌 펜타닐은 계속해서 쾌감을 준다. 바로 이것이 많은 중독자들이 펜타닐에 끌리는 이유다. 딜러의 입장에서도 펜타닐은 더 저렴하고 소량으로 유통되기 때문에 은밀하게 거래할 수 있다. 헤로인의 경우, 원료가 되는 양귀비의 꽃을 피우는 데 약 3개월이 걸리는 데다 양귀비밭이 눈에 띄기에 법 집행 기관의 표적이 되기 쉽다. 또 헤로인을 정제한 다음에도 경비가 삼엄한 국경을 넘어 부피가 큰 물건을 운반해야 하는 추가적인 문제에 직면한다. 하지만 펜타닐은 중국 실험실에서 제조되어 저렴하게 유통되며, 부피가 작기 때문에 미국으로 반입하기가 훨씬 쉽다.
새롭게 등장한 마약 거래 시장 다크 웹
펜타닐 시장에 진입한 멕시코 카르텔
과거에는 불법 마약을 구하려면 길거리에서 딜러와 만나 은밀하게 돈과 마약을 교환해야 했다. 하지만 이제는 다크 웹에 접속하기만 하면 신분을 노출하지 않고도 마약을 ‘주문’할 수 있다. 여기에 빠르게 적응한 마약 딜러들은 부유한 국제 마약상이 되었고, 디지털 기술에 능통한 10대 청소년들은 강력한 마약을 우편으로 집 앞까지 배송받을 수 있게 되었다.
오늘날 불법 펜타닐이 미국으로 들어오는 경로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중국에서 우편으로 들어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멕시코에서 국경을 넘어 들어오는 것이다. 멕시코 카르텔은 미국인 마약 소비자들의 현금을 등에 업고, 뉴욕, 로스앤젤레스와 같은 미국 내 대도시는 물론이고 미국 전역으로 세력을 확장했다. 이들은 중국에서 전구체 화학 물질을 공급받은 후 헤로인을 비롯한 다른 약물과 혼합하는데, 숟가락으로 덜어서 섞는 조잡한 방식을 사용하다 보니 순수 펜타닐이 얼마나 들어가는지 알지 못한다. 이와 같은 용량에 대한 정보 부족이 펜타닐 과다 복용 사태의 근본적인 원인이며, 많은 사람들이 사망하고 있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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