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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도서

오늘, 난생처음 살아 보는 날

by 글쓰남 2017. 1.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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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난생처음 살아 보는 날 - 10점
박혜란 지음/나무를심는사람들

어떻게 매일매일 웃는 일이 있을까
그래도 마지막 순간까지 잃지 말아야 할 것들이 있다.

서울, 대전, 대구, 부산 그리고 제주까지 일흔이 되었지만 박혜란은 종횡무진 대한민국을 누빈다. 저술 활동 외에도 강연, 방송 등을 통해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을 만난다. 하지만 그도 나이를 비껴갈 수는 없었다. 마라톤 선수를 해도 좋을 만큼 심장이 튼튼하다는 말을 들은, 신체 부분 중에서 유일하게 자랑스러웠던 심장에는 세 개의 스텐트가 박혀 있고, 삼시 세끼 차려먹는 일이 갈수록 버겁기만 하다. 오십 년 이상 사귀어 온 죽마고우 같은 커피도 오후에 한 잔 마시면 어김없이 새벽에 잠이 깨어 커피 마시는 걸 주저하게 되었다. 괜찮다가도 느닷없이 기운이 쫙 빠지는 몸의 변화와 저녁 9시가 되면 어김없이 졸음에 빠지는 등 지금까지 살아온 삶의 방식이 바뀌는 순간이 필연적으로 찾아왔다. 스스로를 심심한 것을 못 견디는 재미주의자라고 여기지만, 갈수록 웃을 일은 줄어갔다.
어느 날 강연 말미에 한 청중이 저자에게 묻는다. “선생님은 꿈이 뭐예요?” 꿈은커녕 그저 이대로 현상 유지만 하면 더 바랄 게 없을 것 같은 심정인데 70 넘은 이에게 꿈이 뭐냐니? 하지만 강연 내내 ‘시작하기에 늦은 나이는 없다’고 떠들어 대 놓곤 나이 뒤에 숨을 수는 없었다.



인생 선배로서의 책임감으로 여든 살까지 하고 싶은 일들을 빛의 속도로 떠올려 일흔 살의 버킷리스트를 만들어 냈다. 바르셀로나, 프라하 같은 마음에 드는 도시에서 한 달쯤 살아 보기를 꿈꾸고, 언젠가 다큐멘터리를 찍고, 대학시절처럼 연극 무대에 서고 싶은 바람을 가지게 된 것이다. 
몸이 자신을 가지고 놀아도 기죽지 않고 마음만은 늘 즐겁고 자유로운 사람이 되기를 바라며, 손주들이 아이언맨 인형을 갖고 놀 때 위풍당당하게 “얘들아, 할머니는 아이언우먼이란다. 심장에 아이언이 세 개나 박혀 있거든.”이라고 유머러스하게 말한다.
외출할 때면 휴대폰이나 지갑, 복용하는 약 등을 놓고 나와서 번번이 집으로 다시 돌아가는 일이 잦아져 치매 걱정을 하기도 하지만, 미니카를 타고 싶어 하는 손녀딸을 위해 두려움을 이기고 넓은 잔디밭을 종횡무진 누비는 용기를 발휘하기도 한다.
이뿐이 아니다. 젊을 때와는 비교할 수 없지만, 여전히 호기심을 잃지 않았다. “어머니 아버지는 오실 데가 아니에요. 시끄러워서 못 견디실 거예요.” 하며 자신의 첫 콘서트 초대를 거절한 아들 이적의 말에 잠깐 고민했지만 아들의 공연은 자신에게도 첫 경험이라는 생각에 직접 표를 사서 공연을 즐기기도 했다.
박혜란이 들려주는 노년의 이야기는 낭만을 강조하거나 이렇게 나이 들어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담담하게 세월을 받아들이며 작가의 삶 속에서 펼쳐지는 크고 작은 일들을 한층 여유롭게 받아들이고 즐기는 모습을 보여 준다. 
준비되지 않은 노년을 맞이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갈수록 강팍해져 가는 사회 속에서 홀로 모든 것을 감내해야만 하는 세대들에게 한바탕 웃음, 한순간의 용기, 한 줌의 호기심을 잃지 말라는 말을 조용히 들려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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