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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이 글 못 쓰게 만드는 방법 - ![]() 조애나 러스 지음, 박이은실 옮김/낮은산 |
“어쩌다 문학은 손바닥만 한 세계관에 지배당해 왔는가.”
11가지 분석 도구를 통해
우리의 무의식을 침투하는 날카로운 질문들
가장 깊이 있고 독창적으로 명료한 책 중 하나. 그동안 무엇이 감춰져 왔고 무엇이 거짓으로 포장되어 왔는지를 러스는 무척 흥미롭고도 전복적인 방식으로 접근하고 있다. 문학 비평은 이제 더 이상 예전처럼 이루어져서는 안 될 것이다.
- 마지 피어시, 《시간의 경계에 선 여자》 저자
이 책에서 가장 돋보이는 부분은 여성의 글쓰기가 어떻게 억압되어 왔는지 11가지 항목을 들어 반어적으로 분석하고 있다는 점이다. 책의 목차이자 러스의 관점을 잘 보여주는 11가지 방법은 다음과 같다.
금지하기: 여성들이 글쓰기에 필요한 자원에 접근하는 것을 막기.
자기기만: 무의식적으로 여성의 글을 무시하거나 평가절하 할 수 있도록 사회적 편견 만들기.
행위 주체성 부정하기: 여자가 썼다는 사실 자체를 부정하기.
행위 주체성 오염시키기: 외설적이다, 미쳤다, 개성 없다는 식으로 글 쓴 주체 더럽히기.
이중 기준으로 평가하기: 여성의 경험과 여성의 예술이 맺는 관계에 이중 잣대 들이대기.
잘못된 범주화: 여성 예술가를 아내, 어머니, 딸, 자매, 연인 등으로 분류하기.
고립시키기: 단 한 편의 작품만을 특별하게 만들어 외떨어진 성취 신화 창조하기.
예외로 취급하기: 문제의 여성 작가를 유별나고 이례적이라고 선언하기.
본보기 없애기: 여성 작가들에게 영감을 주는 본보기를 박탈해 전통 끊어 버리기.
회피하게 만들기: 여성 스스로 여성의 정체성을 부정하게 만들기.
미학적이지 않다고 보기: 무엇이 보편이고 미학인지 규정하고 대중화하기.

러스는 자신의 문학적 테크닉을 학문적인 작업에 유감없이 발휘하는데, 그러면서도 분석 요점에서 벗어나지 않고 명징하게 메시지를 전달한다. 또한 여성에게 초점을 맞추면서도, 여성이 지배 권력 구조에서 배제되고 소외된 유일한 집단이 아님을 강조하면서 우리의 무의식을 침투하는 날카로운 질문들을 던진다. “어쩌다 문학이 손바닥만 한 세계관에 지배되어 온 건지, 자신이 속한 젠더나 국가에서 비롯된 우월감이 ‘위대함’이라는 것에 대한 감각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다양성을 콩알만 한 자아를 위협하는 것으로 여기지 않고 아름답고 흥분되는 것으로 볼 수 있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삶에서 내린 선택들은 대개
불완전하게 하는 것과 아예 하지 않는 것 사이에 있다.”
몇 세기에 걸친 방대한 자료, 누구도 할 수 없었을 무모한 작업
“여자들은, 그래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을 썼다. 러스는 이 책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썼던 여자들, 그렇기 때문에 썼던 여자들, 그래서 썼던 여자들, 우리가 사랑한 여자들, 우리가 사랑할 여자들을 생각하며 썼던 것이다. 세계를 만드는 여자들, 새로운 세계를 만드는 여자들, 새로운 세계를 만드는 꿈을 꾸는 여자들이 쓴 글을 다른 여자들이 제대로 만날 수 있기를 열망하며 러스는 자료를 뒤지고 또 뒤졌을 것이다. 간절하고 뜨거운 마음으로.”
- 박이은실 옮긴이
조애나 러스는 여자들이 글 못 쓰게 만드는 11가지 방법의 근거를 제시하기 위해 몇 세기에 걸친 문헌들을 샅샅이 뒤져 이 책의 재료로 삼았다. 러스의 주요 전략은 (대부분 남성) 비평가들이 한 말과 태도를 그대로 가져와 그들 스스로 이중 잣대, 위선, 자기기만을 드러내도록 만드는 것이다. 이 책에 실린 수많은 인용과 주석은 그 자체로 명백한 증거이자 문학 비평의 역사이다. 더 나아가, 제사 크리스핀은 이 책의 광범하고도 방대한 주석이 사라진 여자들의 “글쓰기 계보”를 되살려냈다고 본다. 지금이야 인터넷으로 손쉽게 정보를 검색할 수 있다지만, 개인용 컴퓨터도 인터넷도 상용화되어 있지 않았던 시절, 러스는 이 방대한 자료를 이 도서관 저 도서관에서 일일이 끌어모아 그야말로 한 땀 한 땀 글을 써나갔을 것이다. 이 책의 옮긴이는 독자들에게 당부한다. “이토록 주석이 많이 달린 글을 쓸 수밖에 없었던 다양한 이유에 대해 함께 곱씹어주기를 바란다”고.
그러나 무엇보다 이 책이 용기 있게 여겨지는 것은, 책의 저자가 글을 쓰고 평가를 받는 위치에 있는 작가라는 점 때문일 것이다. “그나마 허용된 파이 조각마저 빼앗길 수” 있는 위치에서 조애나 러스는 “아예 하지 않는 것”을 택하기보다 “불완전하게 하는 편”을 택한다. 왜냐고? “비평가들이 (한 세기도 전에 했어야 하는 것을) 여태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어느 누가 알고 있는 것보다도
여자들이 쓴 좋은 문학이 훨씬 더 많이 존재한다.”
유례없이 여성 작가들의 활약이 두드러지는 최근 한국 출판 시장을 떠올린다면, ‘여자들이 글 못 쓰게 만드는 방법’이라는 책 제목에 갸웃할 수도 있겠다. 이제 여자들은 무엇이든 쓸 수 있고, 무슨 일이든 할 수 있게 된 것일까. 그녀가 한 것이 아니라 오빠, 남동생, 남편, 아버지가 한 것이라거나, “그녀 안의 ‘남자’가 썼다”라거나, “저절로 쓰였다(즉, 책이 책을 썼다)”는 말도 안 되는 주장들이 받아들여지던 시대는 과거의 일일 뿐이라고 믿어도 되는 것일까. “고결한 여자들은 잘 쓸 수 있을 만큼 인생을 충분히 알지 못하고, 잘 쓸 수 있을 만큼 인생을 잘 아는 여자는 고결할 수 없다”는 19세기적 딜레마는 오늘날의 여성들과는 관련이 없는 것일까.
이 책이 말하고 있는 것들이 낯설어 보인다면, 갖은 방해와 억압에도 글쓰기를 멈추지 않고 “보편”과 “위대함”의 기준에 맞서 온 앞선 세대의 여성들 덕분일 것이다. 이 책을 쓴 조애나 러스를 포함해서. 그러나 우리가 발굴해내야 할 훌륭한 작가들과 작품들은 여전히 많이 남아 있다. 책 전반에 흐르는 분노에도 불구하고 《여자들이 글 못 쓰게 만드는 방법》은 희망으로 가득 차 있다. 이 책 말미에서 러스는 힘주어 말한다. “세상에는 어느 누가 알고 있는 것보다도 여자들이 쓴 좋은 문학이 훨씬 더 많이 존재한다”고.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다른 독자들과 함께 이들의 에너지와, 재능과, 언어에 대한 사랑을 나누는 것이다. 이 책이 당신의 첫걸음에 든든한 동행이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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