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의 사랑 (특별판) - 한강 지음/문학과지성사 |
한강의 『여수의 사랑』
2012년, 등단 19년 차를 맞는 한강의 첫 소설집 『여수의 사랑』. 그간 다섯 편의 장편소설과 두 편의 소설집을 펴낸 중견 작가 한강은 이 책을 다시 내면서 이십대 “아무도 모르게 숨겨둔 사적인 경험”을 돌아보자, 되살아나는 기억이 “종내에는 숨 막히도록 생생하게 가까워오는 것을 느”껴 여러 번 쉬어가야 했다고 고백했다. 그러나 『여수의 사랑』은 1995년 출간 당시 초판 해설에서 김병익이 “그녀는 왜 삶의 치욕들을 헤집어, 그들의 고통스런 운명을 잔인하게, 우리 앞에 던져주는가?”라고 말했듯 작가 자신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버리고 지운 기억을 되살리는 지난한 시간을 겪게 한다. 안간힘으로 자신의 길을 만들어왔지만, 돌아보면 그 시간들은 ‘인간’이라는 상처를 안고 살아온 아픈 시간을 깨우는 뼈아픈 각성의 시간이다. 내가 버린 나의 스무 살을 들추는 일이 그리 달가운 일만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가난했던, 막막했던 그때의 기억은 힘든 시간을 견뎌낸 ‘나’에게 다시 살아갈 힘을 주는 자가 동력을 가동하게 할 것이다. 이것이 『여수의 사랑』이 다시 태어난 이유이다.
그래도 다시, 한강을 읽는 이유!
한강의 소설을 잡는 손길은 어쩐지 조심스럽고 어쩐지 시작부터 아슴아슴 통증을 일으킨다. 한강이 자신의 작품에서 그리려고 하는 것은 어떤 특정한 사회 현실적 인과보다는 존재의 피로감, 희망 없음이 주는 좌절감 같은 근원적인 정서적 상황이다. 세태 묘사에 그치지 않고 그것을 뛰어넘어, 인간의 지울 수 없는 운명적 슬픔, 삶의 비애적 서정, 세계에 대한 비극적 전망을 소설 속에 새겨 넣는다. 작가가 이토록 외로운 삶을 집요하게 붙들고 있는 것은 그의 상상력의 뿌리가 존재의 우수에 박혀 있음을 증거한다. 한강의 인물들은 떠나고, 버리고, 방황하고, 추락하고, 죽음 가까이에서 이 세상에 없는 것들을 그리워한다. 그러면서 존재의 ‘살아 있음’을 일깨운다. 그러나 그렇게 매순간 ‘깨어 있기’란 얼마나 어려운 수도의 길인가. 한강이 그려내는 삶의 외로움과 고단함이 슬프지만 아름다운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그녀는 비속한 일상의 결핍을 안고 있고 그래서 생활 속 좌절들로 희망을 찾지 못하지만, 세속적 희망 대신 삶의 근원성으로의 외로움과 고단함, 운명과 죽음에 대한 어두운 갈망 그 속에서 그것들과의 친화감을 키워낸다. 그녀가 껴안는 인간의 근원적인 슬픔과 외로움의 자리는 우리가 어떤 욕망에 사로잡혀 자기를 잃어가며 바쁘게 살고 있다 하더라도 우리를 끈덕지게 사로잡고 있어 “한밤중의 투명한 자의식 속에서처럼, 새록새록 자라나(김병익)”니, 우리는 전율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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