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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도서

아흔일곱 번의 봄여름가을겨울

by 글쓰남 2018. 8.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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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흔일곱 번의 봄여름가을겨울 - 10점
이옥남 지음/양철북

아흔일곱, 할머니가 짓는 맑은 하루하루

그 삶이 주는 다정한 위로


할머니는 아흔일곱 살이 되었다.

눈 뜨면 밭에 가서 일하고, 산에 가서 버섯 따고 나물 캐고, 그걸 장에 내다 팔아 아이들 키우고 이때까지 살아왔다. 

일곱 살에 여자는 길쌈을 잘해야 한다며 삼 삼는 법을 배웠고, 아홉 살에는 호미 들고 화전밭에 풀을 맸다. 여자가 글 배우면 시집가서 편지질해 부모 속상하게 한다고 글은 못 배우게 했다. 글자가 배우고 싶어서 오빠 어깨 너머로 보고 익혔지만 아는 체도 못 하고 살았다. 그러다가 남편 죽고 시어머니 돌아가신 뒤에야 글을 써 볼 수 있게 되었다.

“글씨가 삐뚤빼뚤 왜 이렇게 미운지, 아무리 써 봐도 안 느네. 내가 글씨 좀 늘어 볼까 하고 적어 보잖어.” 하시며 날마다 글자 연습을 한다. 그렇게 하루하루 적은 글은 일기라기보다는 시가 되었다. 그 기록이 소녀처럼 맑다.


할머니는 그저 잠만 깨면 밭에 가서 일한다. 김을 매면서 뽑혀 시든 잡초 보고 미안하고 미안해서 사는 게 모두 죄짓는 일이라 한다. 눈 쌓인 겨울에는 산짐승들이 무얼 먹고 사나 걱정이 한가득이고, 불난리에 집 잃은 이웃을 위해 고이고이 아껴 둔 옷가지를 챙긴다. 농사지은 것들을 장에 내다 팔고 먼 데 자식들 소식에 전화를 기다리고 다시 맞는 저녁에는 그리움이 밤처럼 쌓인다. 

그러다 가끔, 몸에 좋다며 개구리를 잡아먹던 갑북네 할멈도 먼저 갔다고 나직이 내뱉고, 비오는 날 일 못 하고 집에 있는데, 옆집 세빠또 할멈이 어찌나 말 폭탄을 터뜨리는지 내일 또 비 오면 올 텐데 어쩌나, 걱정하는 대목에서는 웃음이 빵 터진다.

강낭콩을 팔려고 오색에 갔다가 나이 들어서 젊은 사람한테 ‘사시오, 사시요’ 하니 부끄럽지만 그래도 애써 가꾼 생각하며 문전 문전 다닌다. 아흔일곱 살이 되었는데도 어디서든 만나면 깜짝 놀랄 만큼 싫은 사람도 있다. 이웃한테 싫은 소리 듣고 와서 분해하기도 하고, 송이 따러 갔다가 잡버섯에 속았다고 신경질도 낸다. 또 어느 날 하얀 백합을 보고는 깨끗하고 즐거워서 사람도 그와 같으면 좋겠다 한다. 

어디 가든 늘 둘이 함께였던 동무 할매도 저세상으로 가고, 먼 산에 눈 오려는지 아지랑이처럼 안개 돌고 바람 부는 날. 밖에 비 오고 조용한 빈방에 똑딱똑딱 시계 소리만 들리는 저녁. 별이 총총 뜬 밤을 지나는 할머니의 날들에서 조용한 풍경 소리가 들린다.

그렇게 봄 여름 가을 겨울도 할머니처럼 나이를 먹어 간다. 맑고 소박하고 다정하게.



‘봄날은 간다’ 

젊고 눈부셨던 그날들이 아스라이 멀어지는 경험을 한 이들이라면, 한번쯤은 읊조리듯 내뱉었을 말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 말 뒷면에서 나이 든 부모들의 시간을 낡고 바래 가는 희미한 시선으로 보지는 않았나 화들짝 놀란다. 할머니의 “글자들”을 읽으면서, 그 하루하루를 보면서. 그 삶이 어쩌면 세상 모든 어머니들이 걸어온 길이기도 하고, 우리가 가고 있는 길이기도 하기에. 

이옥남 할머니의 하루하루는 늘 새것이다. 글을 읽으면 할머니의 봄날은 흘러가 버린 것이 아니라 아흔일곱 세월의 주름 속에 수줍게 숨어서 머물고 있구나 생각하게 된다. 그렇게 하루하루 정성을 다해 살아가고 또 그걸 글에 담았다. 한 자락도 꾸밈없고, 관념 없이 투명하고 맑다. 세상에 익숙하고 길들여질 이유 없는 자연과 마주하며 일하고 살아서 그랬으리라.

그 맑음과 정성 다한 하루에서 할머니의 삶이 주는 다정한 위로가 배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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